과시, 전시를 위한 박제는 단편적인 예다. 박제는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료이자 종(種)보존, 나아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기능이 있다

[제 225호 뉴스엔뷰] 트로피 헌터와 ‘박제(taxidermy)’에 대한 취재를 결심한 것은 동물 생존권 때문이었다. 인간의 욕망으로 행해지는 헌팅과 이를 통한 박제, 우리가 하나의 생명을 사냥하고 전시하며 과시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싶었다. 과거 짐바브웨 서부 황게 국립공원의 명물·영국 옥스퍼드대의 특별 연구대상이기도 했던 사자 세실이 미국의 치과의사이자 ‘트로피 헌터’인 월터 파머에 의해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지나 박제사와 인터뷰 후 박제가 유전학적인 기록의 수단으로서 자연과학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알게됐다. 취재 방향을 바꿔야 했다.

박제(taxidermy)란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썩지 아니하도록 한 뒤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을 말한다. 사진/
박제(taxidermy)란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썩지 아니하도록 한 뒤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을 말한다. 사진/flickr제공.

<뉴스엔뷰>와 인터뷰에 응해준 윤지나 서울대공원 박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프리카 사냥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박제를 이윤, 수익성에 의해 만들어왔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과시용으로 박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희생된 동물을 박제한 것을 보며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

죽은 동물들을 통해 우리는 더 큰 환경적 요인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윤 박제사는 “태안기름 유출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동물, 덫에 걸리거나 로드킬 당한 동물 등의 표본을 통해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공존하는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이 박제의 순기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윤 박제사는 과시, 전시를 위한 박제는 단편적인 예라고 보았다. 박제는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료이자 종(種)보존, 나아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제 표본은 생물학적인 자료로서 기록의 의미를 가지며 후대 사람들에게 수백 년전 멸종한 동물을 표본을 통해 전달해줌으로써 자연과학 분야에서 연구 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11년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자연사박물관에 수십 년간 전시됐던 토종여우 박제에서 DNA를 추출해 한반도 토종여우 원종의 유전적 특징을 밝힌 바 있다. 토종여우는 강원지역에서 2004년 이후 목격되지 않아 사실상 멸종상태였다. 2009년에도 국립생물자원관이 박제된 불갑산 호랑이로부터 DNA 1240개를 추출, 비교·분석한 결과 남한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가 같은 종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골격표본이 필요하다. 윤 박제사는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경우 표본 99%를 수장고에 보관하고 0.1%만 전시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시용 표본이고 수장고에 저장된 연구를 위한 표본은 극소수”라며 “인력과 예산이 되는대로 가능한 골격표본을 많이 제작해 후대에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전시 표본 외에도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골격표본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박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동물이 폐사하면 사체를 받아 신체 부위별 치수를 기록한 뒤 복부를 절개하여 가죽을 벗긴다. 벗긴 가죽에 붙은 살점과 지방 등을 제거한 후 방부효과를 위해 소금 및 약품처리를 한다. 동시에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실제 크기에 맞게끔 마네킹을 제작한 뒤 가죽을 씌운다. 눈, 코, 입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한 뒤 봉합한다. 일정 기간 가죽에 남아있는 수분기를 제거한 다음 고유한 색을 표현한다. 박제 방법은 동물의 종류, 털 길이, 훼손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하다. 정형화되지 않은 프로토콜은 윤 박제사가 박제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제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해부학적인 정확성’과 ‘생물학적인 특성’이다. 윤 박제사는 “하나의 표본 제작을 위해 근골격계 해부학을 공부하고 사진, 영상, 참고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사육사에게 해당 동물의 습성을 묻기도 한다. 동물의 골격과 습성, 서식지 특징 등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머릿속 상상만으로 작업할 경우 호랑이 표본을 만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려 고양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지나 서울대공원 박제사는 “하나의 표본 제작을 위해 근골격계 해부학을 공부하고 사진, 영상, 참고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서울대공원 제공.
윤지나 서울대공원 박제사는 “하나의 표본 제작을 위해 근골격계 해부학을 공부하고 사진, 영상, 참고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서울대공원 제공.

 

윤지나 서울대공원 박제사와 인터뷰

박제의 역사를 보면 전시, 과시용이 컸다. 지금도 미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트로피 헌터가 활동하고 있다. 박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이유다. 

아프리카 사냥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박제를 이윤, 수익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과시용으로 박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냥이 제한적이고 규제하고 있는 나라에서 박제는 전시나 연구, 교육을 위해 제작되고 활용된다. 사실 동물원 역사 자체가 과시의 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동물원이 가지는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덩달아 박제의 역할, 가치 역시 바뀌고 있다. 인식개선이 느린 수준이지만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제를 교육부문에서 어떻게 활용하는가.

만들어진 표본은 생물학적인 자료로서 기록의 의미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표본이 축적되면 그 자체가 데이터가 되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미래의 연구 자원이 되기도 한다. 표본이 유전자료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일전에 호랑이 박제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통해서 멸종된 남한 호랑이가 시베리아 호랑이와 다르지 않음을 밝혔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박제 표본은 종(種)보존과 연관이 있고 수백 년전 멸종한 동물을 표본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

또한 동물원은 교육적인 관점에서 야생동물 털을 모피 표본으로 제작해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한다. 해부학 연구자료로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두개골 표본을 만들어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물다양성 유지와 동물보호의 의미가 박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혹시 환경오염 등으로 죽음을 맞이한 동물들의 박제도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가? 

저의 경우 동물원에 속한 박제사이기 때문에 자연사한 동물만 표본으로 제작한다. 로드킬, 사냥, 학대 등으로 폐사한 동물은 거의 접할 일이 없다.

그러나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환경오염이 이슈일 때 스승께서 당시 폐사한 조류 20여 종의 박제 표본 제작에 참여했다. 깃털에 묻은 끈적한 원유를 제거하기 위해 식용유와 세제를 번갈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중 몇 점은 기름기를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를 박제해 특별전을 열었다.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고 서식지 훼손 실태를 알리기 위함이다.

야생동물구조센터 통계를 보면 많은 동물이 서식지 파괴, 로드킬, 밀렵, 덫, 방음벽 충동 등으로 죽어간다. 하나같이 사람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충남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는 덫에 걸리거나 낚싯바늘을 삼켜 죽은 삵, 갈매기 등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한 바 있다. 인간에 의해 희생된 동물을 보면서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이처럼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 박제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터뷰를 보았다. 예산과 인력만 뒷받침 된다면 골격 표본을 많이 제작하고 싶다는 말씀도 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골격 표본이 어떤 부분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지 설명해달라. 또한 개인블로그에서 완벽한 표본을 위해 동물을 부위별로 나눠 그린 그림을 보았다. 박제 과정에서 표본이 가지는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수의대 학부생 인턴 시절, 해부학 연구실에서 두개골 형태를 연구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 있다. 골격표본 연구를 위해서는 축적된 자료가 많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적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는 소장 표본수가 방대하여 0.1%만 전시되어 있고 99%를 보관 중이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소장된 표본 대부분을 전시하고 있고 연구를 위해 보관 중인 표본 자료는 극히 적다. 지금은 해외 기관에서만 골격 표본을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정확하고 완벽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표본을 많이 제작하여 연구자료로서 축적하고 싶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박제사 일을 한다고 하셨다. 박제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특성을 살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 동물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는 것인가?

사람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습관이 있는지와 같은 게 궁금하고 알고 싶지 않은가. 직업도 똑같다. 동물을 좋아하다 보니 서식지 환경, 골격 특성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됐다. 영상, 사진, 관련 도서, 외국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도 기본이다. 정확한 마네킹 구현을 위해 동물 사체를 인수 받을 때 마다 신체 부위별 사이즈를 구체적으로 기록해놓고 데스마스크를 만드는 등 자료 축적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표본 제작, 즉 박제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포유류 박제 과정에 관해 설명하겠다. 우선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받으면 신체 부위별로 치수를 기록한다. 가죽을 벗기기 위해 복부를 절개하고 그것에 붙어있는 살점과 지방을 칼로 제거한다. 얇아진 가죽은 소금처리를 한다. 소금은 박제 작업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흔히 쓰이는 재료로서 가죽을 상하지 않게끔 방부효과가 있다. 이후 약품처리와 가죽 유연성을 위해 오일을 바른다. 그 다음 가죽을 씌울 마네킹을 제작한다.

외국에는 헌터를 대상으로 사냥종 마네킹을 기성품처럼 만들어 판매한다. 우리나라 동물원처럼 멸종위기종 등 희귀한 동물만 다루는 곳에서는 기성품을 구할 수도 없어 직접 제작하고 있다. 박제사 마다 제작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저는 발포우레탄으로 마네킹을 제작한다.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신체 치수에 맞춰 조각한 마네킹에 가죽을 씌우고 봉합하면 얼추 모양을 갖추게 된다. 이 상태에서 가죽에 남아있는 수분이 사라질 때까지 일정 기간 건조한다. 기화하면서 빠진 색을 다시 고유의 색으로 채색하고 털, 수염 등을 심으면 끝난다.

박제 진행 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는가?

해부학적인 정확성과 환경이나 서식지 연출에 신경을 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역동적인 포즈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때 동물의 자연스러운 포즈를 연출하려면 해부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최근 작업한 시베리아 호랑이의 경우 서식지가 추운 지방 환경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눈밭을 달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한눈에 봤을 때 “아! 이 동물은 추운지역에서 살았구나!”를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생태환경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표본을 만들 때마다 근골격계 해부학 책을 들춰보고 사진,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사육사에게 해당 동물의 습성을 묻기도 한다.

박제 과정에서 동물의 골격, 습성, 서식지 특징 등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상상만으로 작업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호랑이 표본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반려 고양이가 만들어지는 일이 없도록 종합적인 자료조사가 필수다.

국내에는 박제사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박제사가 되고 싶은 이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박제사가 되고 싶다면 평소 동물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근골격계 해부학과 생태학에 관해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박제할 때 해부학적인 정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손재주가 좋아야 한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행위를 즐겨했다. 마지막으로 박제에 대한 정보는 국내보다 해외에 많다. 적극적으로 외국에 있는 정보를 찾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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