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뉴왕기는 자바어로 ‘향긋한 물’이라는 뜻이다. 향긋한 물이란, 결국 커피가 아니었을까.

[제 225호 뉴스엔뷰] 세계 커피의 종류와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인도네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발리의 루왁커피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고가의 커피이다. 원래 루왁커피는 커피체리의 열매를 사향고양이에게 먹여서 미처 소화가 되지 못하고 배출한 원두를 이용하는 것인데, 자연 상태에서 수확한 원두량이 적기 때문에 사향고양이를 사육하여 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향고양이를 가혹하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루왁커피를 생산하는 사향고양이 사육 현장을 직접 보게 되면, 루왁커피 생각이 안날 정도이다.

발리에서 루왁커피 농장의 사향고양이의 모습. 사진/홍선기 제공.
발리에서 루왁커피 농장의 사향고양이의 모습. 사진/홍선기 제공.

자와티무르주 바뉴왕기(Banyuwangi)는 인도네시아 커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고, 현재도 그 명성은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올해 초 바뉴왕기 출신의 운전기사와 인도네시아 마두라 섬을 답사한 적이 있다.

바뉴왕기의 커피 농장. 많은 주민들이 협력으로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음. 주민들 의견으로는 유기농이라고 함. 대부분 수출용 커피는 농약을 사용하고 있으나 팜투어를 위한 농장은 특별히 유기농으로 생산한다고 함.   사진/홍선기 제공.
바뉴왕기의 커피 농장. 많은 주민들이 협력으로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음. 주민들 의견으로는 유기농이라고 함. 대부분 수출용 커피는 농약을 사용하고 있으나 팜투어를 위한 농장은 특별히 유기농으로 생산한다고 함. 사진/홍선기 제공.

수라바야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300km 정도 오면 바뉴왕기에 도착한다. 바뉴왕기가 고향인 운전사의 안내로 커피 조림지가 많은 이젠산(Mt. Ijen)을 통과하면서 여기서 키운 아라비카 커피를 마셨다.

이곳은 네덜란드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도입한 커피를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재배시킨 후, 농장 확대를 위하여 적합한 장소를 택한 곳이 현재의 바뉴왕기이다.

커피에 대한 바뉴왕기 지역민의 애정과 자존심은 정말 대단하다. 바뉴왕기 지역의 커피 농장에서 키우는 종류로는 크게 아라비카(Arabica), 로부스타(Robusta), 엑셀사가 주요 품종이 있고, 그 외에 만델링(Mandheling), 자바(Java), 토라자(Toraja), 가요 마운틴(Gayo Mountain), 코피 루악(Kopi Luak) 등의 커피가 생산되고 있다. 10년간 인도네시아 조사를 하면서 섬마다 생산한 커피를 마셔본 필자로서는 인도네시아 커피가 가장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커피농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품종의 커피. 팜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시음을 권하고 있음.   사진/홍선기 제공.
커피농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품종의 커피. 팜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시음을 권하고 있음. 사진/홍선기 제공.

바뉴왕기는 여러 지역의 여러 부족이 도래하면서 피가 섞여서 만든 혼종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14~15세기 이슬람 세력이 자바 서쪽에 침투하여 세력을 확장하면서 당시 대부분의 종족인 힌두인들이 동쪽으로 서서히 밀리고 결국 발리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뉴왕기 일부 지역은 이젠산(Mt Ijen)에 가려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뉴왕기의 사람들은 이젠산을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들어오면서 점차 자바지역이 개방되었고, 그때 커피가 대대적으로 조림되었다. 즉, 인도네시아 커피의 시발점은 동인도회사를 차려서 식민지화했던 네덜란드인들이다.

커피농장을 이용한 바뉴왕기 팜투어 장소.  사진/홍선기 제공.
커피농장을 이용한 바뉴왕기 팜투어 장소. 사진/홍선기 제공.

바뉴왕기에서는 커피 이야기를 빼놓으면 대화가 안 된다. 이곳에서는 하루 일과가 커피에서 시작하여 커피로 끝을 낸다. 모든 주민들의 이야기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일 뿐.

정부 커피연구소에 근무하시다 은퇴한 분을 만나기 위하여 젬버(Jember Regency)로 이동하였다. 이 분 또한 운전사의 친적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용 중 쇼킹한 소식은 인도네시아 현 정부가 인도네시아 전체 커피농장을 사탕수수 농장으로 바꾸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커피보다는 사탕수수 생산 쪽이 경제적 수익이 많아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탕수수 생산은 브라질이 세계 최고이다. 과연 인도네시아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정작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 정책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규모 산불 및 원시림 남벌도 결국 이러한 경제수종의 조림을 위한 정책에서 출발한다. 중국은 이미 운남성을 비롯한 산악지역에서 전통적인 담배 농장이나 차 농장 대신 커피농장으로 바꾸고 있다. 즉, 커피 시장이 세계적으로 경제성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인도네시아 커피 산업은 후퇴하려는 것일까. 인도네시아에서는 커피 이야기 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커피 마니아가 많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 이야기를 하고, 커피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백 년의 전통을 사탕수수 농장으로 바꾼다는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은 필자도 이해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 정부커피연구소에 근무했던 Mr. Sugi씨와 부인 Magda씨(좌).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매우 인상 깊음.  사진/홍선기 제공.
인도네시아 정부커피연구소에 근무했던 Mr. Sugi씨와 부인 Magda씨(좌).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매우 인상 깊음. 사진/홍선기 제공.

정부 커피연구소에서 은퇴한 노부부 연구자는 매우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 분들은 가톨릭 신자였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신자 수가 1%도 안 되는 종교이다.

인도네시아에는 플로레스 섬이나 동티모르 지역엔 가톨릭 신자가 많다고 한다. 부인의 얼굴이 한국인 같아서 의아했는데, 조상이 술라웨시 마나두섬 출신인데, 이곳엔 선조들이 몽고에서 온 사람들이 많단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일지 아니면 그들이 대륙을 점령하면서 해양으로 밀려난 부족들일지 궁금하다. 바뉴왕기는 자바어로 ‘향긋한 물’이라는 뜻이다. 향긋한 물이란, 결국 커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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