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공예센터는 규암마을 안에 빈집을 임대하여 거리와 골목 사이사이에 공방들을 자연스레 배치했다. 또한 그런 장소를 찾아 임대하는 자율권을 입주할 공방들에게 일임하는 방식을 쓴다. 지역발전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제 225호 뉴스엔뷰] 지방 도시들을 여행 하다보면, 매우 유사한 패턴을 발견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비슷한 ‘문화의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중심으로 비슷한 패턴의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하여, ‘도시재생’이라는 타이틀로 정부에서 펼치는 사업들이 뜻하지 않게 그런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 지역의 개성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알찬 느낌이 들게 하는 지역 발전 모델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도시재생사업의 접근 방법을 바꾸어야 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건물을 짓고 고치는 것보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거리와 마을을 바꾸는 방식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에 기대지 않고 민간의 노력만으로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매우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움직임이 충남 부여에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123사비공예마을 협업 기업 팸투어의 모습
123사비공예마을 협업 기업 팸투어의 모습

 

규암 사비공예클러스터 문화산업지원센터

이 특별한 이슈 중심에는 부여 규암의 ‘사비공예 문화산업지원센터(이하 ‘사비공예센터’)’가 있다. 기존의 지역 발전 모델은 산업단지에 해당하는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 시설들을 짓고 입주할 기업체를 모집한다. 공예촌 역시 인위적인 테마파크나 센터건물을 만들고 그곳의 빈 공간을 공급하여 입주자를 모집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시설, 그 장소, 그 지역을 활성화해내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사비공예센터는 규암마을 안에 빈집을 임대하여 거리와 골목 사이사이에 공방들을 자연스레 배치하고, 그런 장소를 찾아 임대하는 자율권을 입주할 공방들에게 일임하는 방식을 쓴다. 또 공예인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소상공인들이 함께 입주하여 마을 안에 작은 상권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센터에서 이들을 따로따로 입주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공예마을 운영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교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상품을 만드는 데 있어 처음부터 협력하도록 하는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건물을 짓거나 자신들의 공방에 입주하여 문을 여는 것보다, 처음에 이들이 모여 활력을 가진 공동체부터 만들어가도록 애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센터는 여러 모임을 통해 부여와 함께 자연스럽게 협력할 창의집단들과의 만남을 10개월 이상 지속하고 있다. 기존 공예촌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식음료업체, 디자인 회사, 청년활동가 등 공예 외에 다양한 기업들이 들어오도록 50여 사업가들을 모아 대화를 나눴고, 공예단지에서 공동사업을 펼칠 부분을 격의 없이 상의해 왔다. 

 

접근 방법 자체를 창조하자

예전의 지역발전 프레임은 '클러스터'라고 부르는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조성된 후 활성화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비공예센터는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트러스트’라고 부르는 신뢰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돕는 상공인 협업을 통해 입주한 기업들이 주인이 되어 직접 공방 테마마을을 운영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른바, ‘건강하고 개방적인 카르텔’을 짜서 함께 일터를 만들고 서로 일손이 되어주어 비용도 절감하려고 한다.

사비공예센터는 공동으로 일감을 찾아내고 일꾼도 나누는 것으로 생존의 활로를 조금 더 넓히는 식으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들이 서로 무상의 봉사와 유료의 용역을 주고받으면 마을 내에서 교환과 거래가 조금씩 활기를 띨 수 있다고 오희영 센터장은 말한다, 공동의 노력을 하면 일부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거나, 함께하는 기업들의 혜택을 증가시키는 데 쓰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지역재생이라고 하면, 낙후된 거리와 골목에 새 시설들을 짓고 방문자들을 위한 깨끗한 편의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곳 부여 규암의 경우, 자연스러운 마을 형태를 잘 살리는 로컬 디자인에 비중을 두었다. 그렇게 해서 지역의 분위기와 외부적 인상이 좋아지도록 하고 있다. 핵이 될 수 있는 창의적 인재들을 유치함으로 관광객 뿐 아니라 또 다른 창의집단의 유입이 늘어나는 것이 기본적인 과제였다.

인구 유입의 기본이 될 수 있는 일거리 창출 기회를 만들고, 방문자들의 체류시간과 방문빈도를 늘리는 치밀한 계획들을 벌일 때는 군의 행정협조와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따라서 사비공예센터와 함께 일하는 각계의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부여군, 충남도 공공기관, 문체부 및 행안부 등을 설득하여 공공사업을 끌어오는 노력까지도 협업으로 해내고 있다. 전국적으로 사례를 찾기 드문 일이다.

여러 노력의 결과, 1년 동안 20여 곳이 넘는 기업, 예술가, 디자이너 등 여러 창의집단이 자발적으로 부여에 들어와 다양한 활동으로 마을 생태계가 만들어 지고 있다. 25개 공방들에 더해 규암마을 전체가 일종의 테마파크 마을처럼 세팅이 되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어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서비스 확충안을 만들어 군, 도를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희영 센터장은 “현재 공예 뿐 아니라 상가, 공원, 숙박 및 여행사 등 지역발전에 필요한 여러 서비스를 연계하여 마을공동체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규암을 필두로 한 부여 지역에 창의적인 기업들 수십 곳이 함께 모여 ‘모자이크’라고 부르는 공동작업을 통해 로컬 비즈니스를 발전시키고 부여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부여군수, 123사비공예마을 협업 기업 간담회 모습
 부여군수, 123사비공예마을 협업 기업 간담회 모습

 

문화 예술 전문가, 부여에 함께하다

부여 지역의 특별한 행보는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현재 충남도에서 추진한 ‘사비공예센터’를 이끄는 오희영 센터장은 성남문화재단에서 오랜 시간 일해 온 문화예술 전문가다. 특히 외부 인적 자원을 영입해 협업을 이끌어내는 귀재로 알려져 있다. 부여 규암의 공예클러스터가 지역 내부의 인적역량 외에 경기도, 인천, 서울 지역, 그리고 전북 등 외부의 창의적인 인재들을 끌어들여 모자이크를 구성하도록 하는 리더 역할을 오센터장이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현재 오센터장은 농업이 결합된 창의적인 공예상품의 발굴에 도전 중이다. 행안부의 ‘융합적 지역활성화모색단’의 구성원으로서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부여군의 청년정책을 새롭게 만들어 외부의 청년들을 유입시키고 그들이 부여지역에서 경제활동을 발굴하면서 머무르도록 하는 혁신적 시범사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여 지역의 남다른 지역 활성화 모델은 ‘사비공예센터’가 존재하기 전에도 이미 보도를 통해 타 지역의 귀감이 되었다. 현재 부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수장인 노재정 센터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센터장이 되기 전에도 2018년부터 지역혁신가와 사회적 기업들의 협업으로 부여 여행사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왔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문체부사업인 테마관광10선의 충청남도 총괄기획을 노재정 센터장이 맡았었다. 이때 문화기획자, 사회혁신기업, 마을공동체 관련 인물들, 지역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이 힘을 합치는 금강동행숲, 부여모비랩, 부여소쿠리 등 모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방법으로 주민 주도의 지역관광협의체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서울 경인 지역의 전문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는데, 이때 서울 용산에 위치해 있는 ‘안녕소사이어티(대표 안영노)’ 등 여러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들과의 전략적 업무제휴를 통해 기업들이 협업으로 상호 간의 생존을 돕는 ‘모비랩’ 프로그램을 부여에 런칭했다. ‘모비랩’은 ‘모자이크 비즈니스 랩’의 약자로 창업 후 공동의 생존과 활로를 도모하고, 실제 기업들 사이에서 서비스나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효과를 보는 특징이 있다. 노재정 센터장은 ‘부여 문화도시조성사업’을 준비하면서 이같은 ‘모자이크’ 정신을 바탕으로 주민들과 창의적 인재들 사이의 협업망인 ‘부여 거버넌스’를 만들도록 부여군에 제안했고, 사회적 기업, 지역혁신가, 청년들, 여행관광업체, 문화기획사, 예술가 등과 공동작업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협업을 통해 서로의 생존력도 높일 수 있지만, 지역사회를 개선하는 협력의 성과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오희영, 노재정 두 센터장이 강조하는 사항이다. 

 

관광을 부여의 핵심 가치로 부각시키다

부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열기구 체험을 할 수 있다. 백마강변이 아름다우며 농업이 발달하고 전원풍경이 훌륭하다. 백제역사유산 말고도 관광사업으로 승부를 볼만 하다. 하지만 여행활성화를 담당할 주민사업체들은 부족하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두레 사업 중 부여를 담당하는 임지선 PD는 주민사업체를 길러내는 보육자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모여서 관광사업체를 만들고 이들의 여행 서비스로 지역활로를 개척하는 시도를 한다. 임PD는 발굴한 관광사업체들이 다시 협업으로 방문객 체류시간을 늘이는 여행 서비스를 만들게 함으로써 지역상품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임PD는 현재 ‘협동조합 주인’의 기획실장으로 ‘여행자라운지부여로’ 등 여행자 문화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에서 지역 안 청년들의 고용을 창출하거나 문화예술과 디자인에 능한 여러 주체들 간 공동사업을 꾀한다. 식음료 사업을 관광사업에 접목하는 방법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전한다. 문화예술과 콜라보하는 이같은 서비스업이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 낼지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부여 규암의 ‘사비공예클러스터’에 사활을 걸다

앞서 언급했던 오희영 센터장, 노재정 센터장, 임지선 프로듀서 그리고 부여에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문화예술 전문가들과 기업가들은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사비공예클러스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죽어가는 지역이 되살아나는 롤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중하고 의미 있는 지역 내‧외의 협업이 진행되고 있다. 늦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규암 클러스터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의 활동을 취재한, 고무적인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더 많은 기업가, 혁신가,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협업을 준비하며 이곳에 함께 들어오고 있다. 이곳 부여를 아우르고 있는 리더들과 작고 다양한 기업들, 행정이 함께 그려가고 있는 그림은 더 크다.

사비공예클러스터는 여러 면에서 전국의 산업단지, 문화의 거리, 예술촌 등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언급되었듯, 상공인이 협업과 조합 방식으로 상호 간 신뢰를 가지고 테마마을을 주인의식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화예술 전문가와 사회적 경제 전문가, 그리고 여행사업 전문가를 주축으로 한 다방면의 전문 활동가들이 이곳 부여라는 곳에서 융합되는, 색다른 매력에 세상이 주목을 하고 있다. 덧붙여, 문화예술 등 창의적인 콘텐츠들이 식음료 등의 서비스와 결합해 실리적인 지역경제 만들기에 도전한다는 점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사비공예클러스터 일대가 공공자금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존하려는 경제인들의 모임부터 자리잡아, 로컬 비즈니스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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