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법원 판례, 지병 있어도 과로사 인정

경찰, 부검 이유는 과실치사 여부 때문

[제224호 뉴스엔뷰]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대전물류센터에서 사망한 김동명(59, 가명)씨의 사망원인은 ‘기타’로 분류됐다. 사건을 담당한 대전 유성경찰서는 김씨의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부검을 진행했고, 1차 결과 사인은 심정지였다. 현재 경찰은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2차 검사를 진행 중에 있다. (관련기사 : 사망 택배노동자의 마지막 18분)

과로사는 사회적 용어로 의학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최근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국과수는 과로사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면서 “과로사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강도, 부검결과 등을 종합해서 유권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과로사는 사회적 용어로 의학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최근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국과수는 과로사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면서 “과로사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강도, 부검결과 등을 종합해서 유권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유족들은 하루 12시간 야간 노동을 해온 김씨가 “너무 일이 힘들다. 다른 일을 찾고 싶다”고 말한 점, 택배노동자와 같이 주야가 바뀐 지 3개월이 가장 힘들다는 택배 노조 관계자의 증언, 또한 고인이 평소 병원을 자주 다니며 건강관리를 한 점 등을 미뤄 과로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2차 부검이 진행돼도 ‘과로사’라는 답을 들을 수 없다. 과로사는 사회적 용어로 의학적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국과수는 과로사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면서 “과로사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강도, 부검결과 등을 종합해서 유권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로사’의 여부는 근로복지공단의 영역이다. 경찰은 변사 사건 조사 결과를 근로복지공단에 보내게 되고, 이는 판단의 근거로 쓰인다. 과로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란 경우 ▲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 등으로 공단 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판단한다. 

 

“지병 여부 중요하지 않다”

과로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늘 ‘지병’의 문제가 따라온다. 산업재해와 적용 여부 때문에 유족과 사측이 대립하는 가장 흔한 지점이다. 실제 한진택배는 지난 10월 12일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36세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고인이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라고 해명하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지병이 있었다는 것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과로사’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변명이란 글을 통해 “오히려 일반적인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직업적 요인이 질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고혈압 같은 기초질환이나 기존에 심장질환이 있었던 경우에는, 똑같은 과로를 해도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뇌심혈관 질환의 업무관련성 판정 과정 즉 과로사 여부 판단에서는, 기초질환이나 기저질환 여부보다, 과로가 있었는지 여부를 더 먼저,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게재했다.

실제 대법원도 관련 판단을 한 바 있다.

“63세의 고령이던 경비원이 24시간 경비원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맞교대 근무로 말미암아 육체적 과로하고 실직의 염려 등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한편, 겨울철에도 순찰업무 등을 위하여 바깥의 추운 날씨에 계속 노출되어야 하는 경비원 업무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사망 당일에도 최저기온 영하 7.7℃의 추운 날씨 속에 경비초소 순찰업무를 마치고 갑자기 자신의 따듯한 경비초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심한 실내의 온도차에 노출됨으로써,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혈압증세가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뇌실질내출혈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이와 달리 망인의 고혈압증세가 자연발생적인 과정을 통하여 뇌실질내출혈로 악화되었음을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단정할 수도 없고, 달리 망인의 고혈압증세가 뇌실질내출혈로 악화된 것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할 자료가 없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8230 판결

“회사에 입사하기 이전에는 건강하던 근로자가 회사에 입사하여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해 오다가 1995년경부터 고혈압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근로자의 업무 자체는 육체적으로 크게 힘든 것이 아니었으나, 근무시간 내내 서서 작업해야 하고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관계로 그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도 근로자는 1995년경부터 고혈압 증상을 보여 과로를 하여서는 아니 되는 신체적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회사가 익산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하는 바람에 1966. 3. 11.부터 1일 3교대제에서 1일 2교대제로 외부적 작업환경이 악화되었고, 그에 따라 근무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한 연장근로시간이 종전보다 3배 가까이 폭증하는 등 재해 발생 무렵에는 근로자로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업무를 계속하여 온 데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나머지 이미 보유하고 있던 고혈압이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어 1996. 7. 3. 소뇌경색증 등의 상병을 입게 된 것으로 추단함이 상당하다”

대법원 2004. 9. 3. 선고2003두12912 판결

최 활동가는 이와 관련해 같은 글에서 “직업병이나 업무관련성 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기존 질병, 가족력, 생활습관 등을 탓하며, 질병의 직업적 원인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는 기업과 자본의 매우 고전적인 수법”이라면서 “거대 택배회사들이 지금 할 일은 ‘과로사인지 아닌지’라는 질문으로 발목 잡는 대신,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줄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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