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내 의식 잃은 뒤 응급조치 흔적 보이지 않아

물류센터 내 제세동기 사용 없이, 최대 18분간 방치

[뉴스엔뷰] 안전관리요원이 있었지만 응급조치는 없었다. 한진택배 대전물류센터 내 차량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김동명(59, 가명)씨는 119 신고가 접수된 지난 10월 27일 오후 11시 24분부터 구급대원이 도착한 11시 37분까지, 최소 13분간 방치됐다. 골든타임을 놓친 채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결국 숨졌다. 사망 원인은 심정지, 이를 만든 원인은 과로였다.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지난달 27일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심장정지로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지난달 27일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심장정지로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 고인의 모습은 트럭 운전대에 앉아 팔을 축 늘어트린 상태였다. 몸은 뒤로 젖혀져 있었다. 차량이 좁아 고인을 운전석에서 빼낸 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다. 회사 측에서 응급조치를 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심정지에서는 골든타임이 굉장히 중요하다”

의식을 잃은 김씨의 모습을 목격한 물류센터 관계자 역시 구급대원의 발언을 뒷받침한다.

“아무도 구급 조치를 하지 않았다. 물류센터 내 안전관리 요원은 물론 자동 제세동기(심장충격기)까지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한진택배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없지만, 확실히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맞다”

응급조치가 있었다면 김씨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심정지 발생 4~5분 사이 적절한 응급조치가 이뤄지면 회복이 쉽다.  4~5분에서 10분 내 심폐소생술이 이뤄지면 혈액순환과 조직에 산소 공급이 이뤄져 초기 상태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회복력은 갖출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10분을 넘길 경우 조직 손상이 심각해져 효과적인 치료가 어렵다.
 

최대 18분간 방치됐을 가능성

한진택배를 포함해 대부분의 물류센터에는 신호수가 존재한다. 트레일러 위 물건들을 많은 차량으로 옮기는 물류센터의 특성상, 사고 방지를 위해 신호수들은 차량 통제 일을 한다.

이복규 택배노조 조직국장은 “고인이 쓰러진 뒤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신호수들은 통제하는 입장에서 멈춰있는 차량에 대해 방향 설정 등을 지시한다”면서 “대체적으로 길어야 5분이라는 시간이 신호수들이 차량이 움직이지 않고 여유를 주는 시간”이라고 밝혔다.

구급대원과 이 국장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김씨가 의식을 잃은 시점을 00분이라고 가정했을 때, 신호수는 최대 5분 뒤 통제를 시작했고 발견부터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까지는 13분이 걸렸다. 결국 김씨는 최대 18분이라는 시간 동안 방치됐고,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결론이다.

유족 측 사위 박씨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허망하다”면서 “살릴 가능성이 있었는데 못했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구급대원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장모님과 처남이 옆에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안에서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화물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숨졌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안에서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화물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숨졌다.  사진/뉴시스

 

12시간 강도 높은 노동, 결국 죽음으로

사망한 김씨가 한진택배 대전물류센터에서 일한 기간은 3개월 이다.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12시간동안 대전과 부산을 오가며 화물을 운송했다. (관련 기사 : 그 죽음의 원인에는 '과로'가 있다)

김씨와 같이 택배 운송 노동자 대다수는 심야 노동에 무방비 노출 된다. 특히 김씨와 같이 택배 업체의 허브 터미널과 서브 터미널 사이를 오가는 운송 노동자의 심야 노동 실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위 박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장인어른은 과거 덤프트럭, 버스 등 대형 운전만 해오셨던 분이다. 대부분이 낮 시간대였고, 열심히 일하셨다.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평생 운수 관련 일을 하시며 장모님과 함께 월세방에서 시작해 점차 집도 넓혀 가신 자수성가한 어른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제게 장인어른이 ‘일이 너무 힘들다. 다른 일을 알아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그렇게 평생 운전하셨던 차 안에서 쓸쓸하게 방치돼 쓰러져 돌아가신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화가 난다”

이 국장 역시 이와 관련해 “운송 업무는 야간작업이 주다. 김 씨처럼 시작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밤낮이 바뀌어) 가장 힘들다. 오전에 집에 들어가도 잠이 안 온다. 김씨도 설 잠을 자다가 출근해서 운전하며 피로와 과로가 계속 쌓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 사망했지만 김씨는 산업재해 대상도 아니다. 고인이 유진물류를 통해 한진택배 일을 하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유진물류도 “김씨가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사업자라서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택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간선차량 기사 분에게 불행한 일이 생겨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현재 대전 노동청과 경찰이 관련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인  관계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 외에는 전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안에서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화물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숨졌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안에서 화물 운송을 담당하던 김모씨가 화물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숨졌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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