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 기득권 싸움 치부하기엔 석연찮아

[이태호 (서울 강북 거주, 50대 직장인)] 지난 7월 23일 정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고 발표하였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정부의 의료 정책에 간담회 형식을 통해 반대했지만,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이에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포함해 강경한 법적 조처를 하는 등 의료계가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정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2차 총파업이 이틀째 이어지고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의과대학 정원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0.08.27. /사진=뉴시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정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2차 총파업이 이틀째 이어지고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의과대학 정원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0.08.27. /사진=뉴시스

이번 사태는 '의사들의 기득권' 싸움으로 매도하기에는 석연찮은 쟁점들이 놓여 있다. 아쉽게도 대다수의 언론은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만 매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같이 구태의연하고 무성의한 보도 태도는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키고, 국민의 생명이나 국가 의료재정을 더 곤란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언론이 좀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앞서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감행한 주체'는 '의사'가 아닌 '정부'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유행 조짐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단기적으로 어떤 효과도 볼 수 없는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감행했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부동산 실책에 따른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현장의 최전선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의사와 의료진을 구렁으로 몰고, 이번 정책에 반대하자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도 모자라 '여론몰이'를 통해 의사들을 '마녀사냥'식으로 걷어차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의대 증원'의 내용도 실상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수도권과 지방간 의료 격차를 줄여야 한다거나 코로나19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OECD 국가들을 기준 삼아 단순 산출된 부족 의사 수를 근거로 일단 의사 수를 일단 늘려 보겠다는 심산이다.

정작 의사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이다. 가령, 한국의 위내시경 검사의 의료수가는 4만 원. 하지만, 정부가 자주 비교하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에 속하는 것은 조금만 살펴보면 알아낼 수 있다. 지역 간 의료 격차, 특수 전문과목 분야 의사 부족,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특수 전문의의 부족 문제는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료 현실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의료수가의 현실화, 불안정한 지역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어야 한다. 만약, 지금처럼 의료 소비에만 초점을 맞춰 포퓰리즘형 의료 정책을 고집하는 한, 국가 의료재정은 더욱 악화할 뿐만 아니라 그 당사자들인 의료 인력을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공공의대' 입학 심사 주체 역시 논란이다. 처음엔 지자체 등 단체장 추천을 거론하다가 여론 분위기기 나빠지자 모호한 전문가와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추천위원회를 통해 심사하겠다며 번복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예비 검사'나 '예비 판사'를 뽑을 때나 첨단기술을 연구할 '과학자'를 뽑을 때마다 유사 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정부가 도입하려는 '의대 증원' 및 '지역의사제'는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던 일본을 통해 실패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을 비롯한 3대 의료정책을 무리하게 강행하고, 의사 파업에 대해 부적절한 법적 대응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 문제 해결의 당사자들인 의사들의 90%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런 허술한 정책을 독선적으로 강행하는 한 실효성을 얻기 어렵다. 이번 의사 파업에 비판적인 국민들은 의료 분야에 관한 한 '전문적' 판단이 쉽지 않다. 정부나 언론이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면, '단순한 기득권의 고집과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받고 단죄받을 상황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곤란한 의사들의 특수성을 이용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정책을 몰아붙이는 것은 촛불혁명과 민주적 선출로 만들어진 정부답지 못한 비민주적 태도다.

한국 의료제도가 진정한 사회안전망으로 자리 잡길 원한다면, 정부는 처음부터 의료 교육과 현장 수련을 제대로 거치고, 수십 년 이상 노하우와 경험을 갖춘 의사들의 의견을 우선 수렴하고 반영했어야 한다. 의대 증원이 정말 시급하고 중요하다면, 당사자들의 이해와 공감, 통합적인 노력이 없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정책을 즉시 철회하고, 업무 개시 명령을 비롯한 부적절한 조치를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의사와 의료진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내세워 그들을 진정성 있게 지원하고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엔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