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현실화되어가는 '대통령 탄핵의 역설'

[뉴스엔뷰]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업무에 복귀한다. 물론, 탄핵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에 대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탄핵과 별도로 검찰조사 및 특검수사가 진행되었음에도 우리 헌법이 대통령이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함에 따라 잠시 미루어질 뿐 퇴임 후 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에게 법적책임을 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 = 뉴시스

다만, 13년 전 노무현 대통령 업무 복귀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 대통령은 임기 2년차였고, 지금의 박 대통령은 임기 5년차다. 2년차와 5년차의 차이만큼 그 위세와 영향력은 현저하게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레임덕에 빠진 상황에서 헌재의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결정으로 가까스로 복귀한 만큼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민의 조롱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도 모든 대...화와 협력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순도 100% 완벽한 식물 대통령’의 탄생이다.

나는 박한철 소장이 3월13일 이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날짜를 못을 박았을까? 그리고 13일 이전이냐 이후냐에 따라 과연 무엇이 달라진다는 거냐?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최소한 헌법재판소 내에 탄핵 기각 쪽으로 기울어져있는 재판관이 두 명이 있다는 이야기구나...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을 박 대통령 측도 알고 시간끌기를 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것에 미리 대비하라는 이야기구나...

현재 권력의 칼자루는 야당이 쥐고 있다. 만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게 되면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으로 보이며, 새누리당은 사실상 소멸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특히,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야당은 ‘헌법재판소 폐지’라는 초강수를 들고 개헌에 전격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헌법 개정 이후 30년간 두 번의 탄핵소추가 있었는데 두 번 다 기각을 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는 또 하나의 통제 불능의 권력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정권교체’와‘문재인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탄핵되어 권력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잠재적 적군’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프레임에서는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손학규가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지만, 박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여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야당 내 ‘선의의 경쟁’프레임은 힘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분열은 공멸’이라는 문재인의 외침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탄핵으로 국민의 분노가 해소되지 못했으니 대선에서 해소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권교체’의 최대 공신은 헌법재판소가 되고 스스로는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면 대선 흥행의 칼자루는 오롯이 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새누리당 내에서 이인제-원유철-안상수가 경합을 하건 바른정당 내에서 유승민과 남경필이 경합을 하건 국민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일 박 대통령이 여전히 청와대에서 건재하다면 그때 바른정당은 여당내 야당의 역할을 톡톡히 함으로써 또 한 번의 도약을 노려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되어 청와대를 떠나게 되면 ‘국정농단’의 공동책임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져야 하지만,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친박결집을 시도한다면 그 반대 전선의 선봉에 바른정당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재인과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이 반드시 마이너스의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손학규 등의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 탄핵이 반드시 인용되어야만 입지를 다질 수가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탄핵이 인용되면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만 기각되면 박 대통령과의 공동운명체가 되어 퇴임 후 소멸의 수순을 밟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른 시점인 대선 이전에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가 ‘박근혜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정치를 하고 대선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나 개인적으로는 탄핵 기각도 큰 프레임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것이 개헌의 촉매가 될 수 있고, 야권 지지층의 결집을 이뤄냄으로써 대통령선거에서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크게 보면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보수세력의 몰락을 보다 확실하고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여전히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있다. 그들이 버티면 버틸수록 보수 몰락은 기정사실화되고, 그들이 내려놓는 시점이 빠를수록 보수는 재결집과 진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과연 박 대통령, 새누리당, 헌법재판소 중 누가 자충수를 가장 크게 둘까? 앞으로 벌어질 탄핵 정국에서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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