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및 제3지대에 중대한 구도 변화 불가피

[뉴스엔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조기 대선 레이스는 사실상 ‘리셋’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주도해 정치 교체를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며 대선 불출마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부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며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정치권 전체에게 책임을 돌렸다.

사진 = 뉴시스

그는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이 실종되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며 본격 대선 행보에 나선 후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었음을 시인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언론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불출마 선언은 반 전 총장이 지난 달 12일 귀국한 이후 불과 20일만의 중도하차로, 지지율 폭락에 따른 쇼크와 가족들의 만류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안철수·손학규·정운찬·김종인 등 제3지대 핵심주자들이 반 전 총장을 사실상 배제하고 통합 논의에 착수하는 등 자신의 미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쇼크’가 현실화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상당수 의원실에서 긴급대책회의가 소집되었고, 보좌진들도 정보와 반응을 확인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반 전 총장 영입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여온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사실상 일 손을 놓아버렸다.

김명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오늘 오전까지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협치와 분권을 이루기 위한 개헌에 뜻을 모으고, 갈라진 국론을 통일하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로 함께 마음을 모았던 반 전 총장이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며 “그 분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목전의 이해관계에만 급급한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좌절했기 때문이라는 사퇴의 변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야당을 비난했다.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당황스럽지만 정치개혁,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여망을 존중한다"며 "아쉽지만 본인의 순수한 뜻을 존중하며 반 전 총장의 뜻을 잘 받들어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 영입에 앞장서온 김무성 의원은 침통한 표정으로 의원총회 도중 자리를 떴다.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는 "너무 큰 충격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반 전 총장의 대통령 불출마 선언을 존중한다"며 “애석하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용진 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본인에게도 3주의 짧은 정치경험이 실망스럽겠지만, 국민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대선후보로서의 검증 과정이 혹독하지만 이는 국가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무거운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안철수·이재명·안희정·김부겸·손학규 등 대선주자들도 각자 짤막한 논평을 내놓기는 했지만 ‘반기문 불출마’로 시계 제로 상황에 놓인 향후 대선 구도에 대해 무거운 마음으로 골몰하는 모습이다.

다만, 여의도 일각에서는 제3지대로 방향을 선회하려던 반 전 총장이 대선 레이스에서 탈락함에 따라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중도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역할과 잠재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입장에서는 반 전 총장과의 진검승부 구도가 깨짐으로써 대세론에 변화가 생길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반기문 쇼크’로 대선 레이스가 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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