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4,389명의 이름과 그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재야사학자 임종국의 뜻을 이어 19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가 출판했다.

[뉴스엔뷰]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4,389명의 이름과 그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재야사학자 임종국의 뜻을 이어 19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가 사전 준비작업을 2001년부터 진행, 12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제작에 착수했다.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8년에 걸친 제작기간 동안 친일인명사전은 많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정치적으로 이요되기도 했는데, 국회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예산이 삭감된 적도 있었다. 2008년 4월 29일에는 발간에 앞서 친일인명사전의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발표된 명단은 큰 논란을 야기했고, 편찬위원회는 5월부터 7월까지 2달간 이의신청을 접수하고, 이후 지속적인 논의 끝에 최종명단을 확정하고, 2009년 11월 8일에 완성된 사전을 공개했다. 숙명여대에서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대관이 취소되어 대신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개최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해 “이 사전은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국권침탈과 강압적 식민통치, 반인류적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고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아울러 이 사전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공동체의 아픈 상처를 확인하고 드러내어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간이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엄정한 반성이 있어야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될 것이며, 나아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이 사전은 과거 우리 민족의 내적 허물을 용기 있게 고백하고 반성하여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에 정의의 숨결을 불어넣어 더욱 성숙한 역사인식을 진작하는데 그 취지와 목적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친일인명사전’은 정치적인 투쟁의 수단이 된다. 특히 민족문제연구 소장인 임준열(임헌영)의 과거 행적을 빌미로 ‘편찬위원회의 학문적 중립성’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임준열은 유산정권 당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 활동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의 출판을 반대한 쪽에서는 ‘좌편향’이라는 지적이 지속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에 대해 “사전 수록은 오로지 선정기준에 따를 뿐이며 일부의 형평성을 잃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전에는 다수의 좌파 인물이나 월북 인사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고 기준에 부합한다면 어떤 인물이라도 사전에 등재한다는 것이 편찬위원회의 일관된 방침”이라면서 “친일인명사전을 비난하는 인사들이 확실한 자료만 제시하면 보유편이나 수정증보판에 언제라도 반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친일인명사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의 스승인 백철, 친일파 연구 권위자인 임종국의 부친 임문호 등이 수록돼 있다. 임문호는 아들인 임종국이 친일연구서인 ‘친일문학론’을 집필할 때 임문호는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반독재민주화운동 진영의 이론가였던 평론가 백낙청의 부친 백붕제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이 연좌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연좌제적 발상도 단호히 거부한다”면서 “우리가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비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고위 공직자의 경우 선대의 과오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는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공인으로서 역사인식이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유공자로 선정된 서훈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다수 포함된 것과 관련해서도 “ 20명의 독립운동유공자가 사전에 포함되었다”면서 “친일 행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잘못된 서훈이 발생한 원인은 체계적인 근대 인물정보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해당 인사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했기 때문인데, 정부가 발굴보훈이나 역사인물 D.B. 구축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친일인명사전의 의미에 대해서도 민족문제연구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역사적 과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해결한 사례는 없다. 국가가 외면한 미해결의 과제를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역사정의실현의 단서를 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됨으로써 최근 만연하고 있는 퇴행적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우리 내부의 부끄러운 역사를 고백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대면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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