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양부모의 폭행으로 사망한 16개월 정인이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이 있다. 

[제228호 뉴스엔뷰] 지난 10월 13일 양부모의 폭행으로 사망한 16개월 정인이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이 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정부는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아동을 선제적으로 분리해 보호할 수 있는 ‘즉각 분리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입양모의 장기간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영아 정인이(입양 후 안율하)가 위탁 가정에 있을 때의 모습. 사진/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제공.
입양모의 장기간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영아 정인이(입양 후 안율하)가 위탁 가정에 있을 때의 모습. 사진/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제공.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지난 16일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피해아동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두 번 이상 신고되는 등 학대가 강하게 의심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아동을 즉시 분리해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 차관은 “이 제도는 개정 아동복지법이 공포된 날로부터 3개월 후인 3월 하순에 시행될 예정이지만, 그 전이라도 재신고 된 경우 피해아동을 적극적으로 분리 보호하도록 개정한 지침이 12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면서 “학대에 대해 보다 책임 있게 대응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배치하고 있다. 올해까지 118개 시·군·구에 290명을 배치하고, 내년까지 모든 지자체에서 총 664명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배치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학대피해아동쉼터 15곳이 신설됨에 따라 총 91곳의 학대피해아동쉼터가 피해아동들을 보호할 것”이라면서 “피해아동에 대한 상담·교육·치료 등을 진행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10곳이 늘어나 총 81곳에서 피해아동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역시 대책을 마련했다.

장하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보건복지부 발표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수사관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고민했다”면서 “서울청에 아동학대 자문단을 구성하고, 자체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해 일부는 바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2번 이상 신고 건에 대해 최초 수사팀이 병합 수사 ▲수사지휘를 체계화하기 위해 여성·청소년과장이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지휘 ▲2회 이상 신고 사건은 주요사건으로 분리해 서울경찰청에 보고 ▲사건이 불기소될 경우 수사협의체를 만들어 수사 지휘 라인 및 조치가 적절했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아동학대 자문단을 구성한다고 전했다. 소아과 의사와 변호사 등 19명의 자문단을 구성해 수사 때 자문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와 함께 수사관의 전문성을 위한 교육도 강화한다.

장 청장은 “16개월 영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건을 담당하고 수사했던 경찰관들과 지휘감독자까지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객관적인 사실 관계 확인과 조치의 적절성을 판단 중이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4가지 개선책을 내놨다.

먼저 경찰은 2번 이상 신고 건에 대해 최초 수사팀이 병합 수사하도록 한다. 또 수사지휘를 체계화하기 위해 여성·청소년과장이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지휘하고 2회 이상 신고 사건은 주요사건으로 분리해 서울경찰청에 보고하도록 한다.

1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16개월 영아를 학대한 입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달라는 요청과 숨진 아동에 대한 추모 글귀가 적힌 화한이 늘어서 있다.    사진/뉴스엔뷰DB
1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16개월 영아를 학대한 입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달라는 요청과 숨진 아동에 대한 추모 글귀가 적힌 화한이 늘어서 있다. 사진/뉴스엔뷰DB

정인이를 통해 추가적인 아동학대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는 조금이나마 보완됐지만, 아이가 겪은 사건 자체는 그렇지 못하다.

먼저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입양 어머니 30대 장모씨는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기소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밝힌 정인이의 사인은 췌장 절단으로 인한 복강막 출혈이다. 직접적인 사인 이외에도 정인이의 몸에는 복수의 장기 손상과 광범위한 출혈, 발생 시기가 다른 7곳의 골절상, 다수 피하출혈 흔적 등이 발견됐다. 또한 폭행은 올 3월부터 약 7개월간 지속됐고, 해당 기간 내 아동학대 신고가 세 차례나 접수됐다. 

이와 관련해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췌장이 끊어질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폭력이 수반되었을 것이고 극심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며 “‘죽든지 말든지’라는 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8.5㎏밖에 나가지 않는 아기에게 그런 위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는 “8개월간 지속적인 학대 끝에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대 부모 이외에도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경찰에 대한 처분 역시 경징계에 그쳤다. 경찰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3차례나 접수됐지만 미흡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정인이가 폭행 학대를 받는다는 신고가 처음 접수된 것은 지난 5월, 하지만 경찰은 ‘몸의 멍보다는 긁힘이 많은 점’에 주목해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의 일반적인 상처라고 판단했다.

이후 최초 신고자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계속해서 아이의 상태를 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니터링을 하던 중에 부모가 아이를 차 안에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두 번째 신고를 진행했지만 경찰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신고자는 이와 관련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번째 신고 중 가장 중요한 건 차량의 블랙박스에 (아이를) 혼자 뒀는가, 그 다음에 CCTV 자료가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했다”면서 “그래서 경찰에 수차례 요청을 했다. 증거가 사라질 수 있으니 빨리 가 달라고 했으나 경찰이 되게 미온적으로 반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신고는 “아이가 야위었다”는 내용의 신고였으나, 이 마저도 부모의 적극적인 부인으로 무혐의 결론이 났다.

사건 발생 후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양천서에서 발생한 16개월 영아 학대 신고사건 부실 처리에 대한 감찰조사 후 판단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난 2일 교수·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시민감찰위원회 심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팀장을 포함한 1차 신고사건 담당자 2명과 2차 신고사건 담당자 2명에게 ‘주의’ 처분을 내리고 APO 감독책임으로 해당 여청계장에게 ‘경고 및 인사조치’, 총괄책임으로 전·현 여청과장 2명에게 ‘주의’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징계 단계는 주의→경고→견책→감봉→정직→해임→파면 순으로 구성되며 이번에 담당자들에게 내려진 주의와 경고 등 조치는 경징계에 해당한다.

엄숙희 시사평론가는 이와관련해 <뉴스엔뷰>와의 인터뷰에서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정인이는 우리 사회가 가지지 못했던 많은 제도적 보완을 도왔다”면서 “하지만 정인이 본인이 당한 일을 보면 그렇지 않다. 남은 우리가 정인이를 위해 살인죄 기소와 아동학대 재발방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촘촘한 입법과 제도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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