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選數] ‘선수’(選數)가 계급?
경선, 국회의원 4선들의 무덤? 경선이 무서운 선배들 4선 이헌승·서영교 원대 선거서 3선에 敗 ‘선수가 계급’아냐 국회 외통위원장 경선서도 4선 안철수, 3선에 대패 ‘망신살’
[뉴스엔뷰]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형만 못하다는 말이다. 먼저 태어난 형이 인생 경험이 많기 때문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에서는 이 속담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정치 경험이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경선에서 패배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은 당선 횟수인 선수(選數)를 우선시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의외의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3선은 국회 상임위원장, 4선 이상은 국회부의장이나 국회의장을 맡는 게 관례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선수에서는 연장자를 우대한다. 장·차관을 지냈다고, 또는 국무총리를 지냈다고 초선이 국회의장 자리에 도전하면 당선도 되지 않을뿐더러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계급이 깡패’라는 말처럼 국회는 ‘선수가 깡패’라는 말이 회자하는 이유이다.
지난 16일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투표에서 3선 송언석 국회의원(경북 김천)이 60표를 얻어 16표를 얻는 데 그친 4선 이헌승 국회의원(부산 진구을)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친한동훈계인 3선 김성원(경기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을)은 30표를 얻었다. 4선 국회의원이 3선들과 맞붙어 초라한 수치의 득표를 한 것이다.
이 의원은 선수도 가장 높고, 나이도 가장 많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송 의원의 지지기반인 TK의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은 25명(대구 12명, 경북 13명)이고, 이 의원의 지지기반인 PK의 국민의힘 의원은 33명(부산 17명, 경남 13명, 울산 3명)이다.
따라서 선수나 나이, 지역구도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한 PK 출신인 이 의원이 고작 16표에 그친 것은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내부의 계파 갈등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모든 객관적 상황에서 이 의원이 유리한 구도였지만, 친윤계를 대표해 출마한 송 의원에게 표심이 몰렸다는 것이다.
친한계를 대표해 출마한 김 의원에게 30표가 몰린 것만 봐도 이번 원내대표 선거가 계파 간 대리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국회 선배가 후배에게 패배한 사건은 국민의힘 뿐만이 아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진작에 선수 파괴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 앞서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3선인 김병기 국회의원(서울 동작구갑)이 4선의 서영교 국회의원(서울 중랑구갑)을 누르고 이재명 정부 초대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는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20%)와 국회의원 투표(8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원내대표 선거에 처음으로 당원 투표를 반영했다. 국회 선수뿐만 아니라 민주당 입당 경력에서 한 참 앞선 서 의원이 국정원 출신인 김 의원에게 일격을 당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이례적 사건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친명계로 분류되는 데 이의는 없다. 다만 김 의원의 경우 제22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를 맡아 비명(非明)계 인사를 대거 낙천시킨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실무를 주도한 ‘찐명계’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번 원내대표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도 본인을 ‘이재명의 블랙 요원’으로 소개했다.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국정원 ‘블랙 요원’처럼 물밑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뒷받침해 왔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전반기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도 선수 파괴 현상은 벌어진 바 있다.
1년 전인 2024년 5월경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당시 5선 우원식 국회의원과 6선 추미애 국회의원이 맞붙었는데, 예상을 뒤집고 우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전체 169표 가운데 우 의원이 89표, 추미애 국회의원 당선인(6선)은 80표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추미애 대세론’에 힘이 실린 상황이었다. 같은 6선으로 강력한 국회의장 경쟁자였던 조정식 의원이 추미애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친명계의 좌장 격인 5선 정성호 국회의원도 사퇴해 추미애 국회의장은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였다.
추 당선인도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을 얻었다며 자신감을 표했는데, 결과는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안팎에서는 친명(친이재명)이 당을 장악해 가던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친명계의 일방통행에 반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과 우원식 의원에 대한 의원들의 호감도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국민의힘에서도 4선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 몫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3선의 김석기 의원에게 패배했다.
국민의힘 전체 108명 국회의원 중 9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김석기 의원이 70표, 안철수 의원이 25표를 얻었다.
비록 안 의원이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합류한 시간이 짧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4선이 3선에 큰 표 차이로 패배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4선들이 3선들에 계속 경선에서 패배하는 사건들이 많아지면서 정치권도 더 이상 선수가 계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