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정치개혁②] ‘지구당 vs 지역당’ 선택은?
상시 정당 활동 ‘지구당’- 지역정치 강화 ‘지역당’ 사무실 설치 못하는 당원협의회…‘빛 좋은 개살구’
[뉴스엔뷰] '돈 먹는 하마’. 부정부패 온상으로 2004년 폐지된 ‘지구당’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구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무실 임대료, 직원 월급 외에 지역에서의 경조사비와 각종 행사 비용, 조직책 관리 비용 등으로 상당한 경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당은 돈을 줘야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판기 조직’이란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위원장이 재력가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구당 운영에 사용되는 막대한 자금을 충당하는 방법은 결국 불법 정치자금 수수밖엔 없었다.
결국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건이 터지면서, 지난 2004년 일명 ‘오세훈법’으로 지구당이 폐지에 이르게 됐다. 즉 지구당을 폐지해 금권 선거를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지구당 폐지 이후 불공정 해소와 정치개혁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쪽과, 여전히 불법 정치자금 조장 및 당 대표의 세력화 활용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특히, 지구당 부활론자들은 과거 지구당의 폐해로 지적된 문제들이 제도개선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구당 폐지 이후 지역위원회 혹은 당원협의회(이하 당협) 등의 명칭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무실을 둘 수 없어 ‘휴대폰 위원장’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협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영남권 지역의 진보 계열 정당이나 호남 지역의 보수정당 계열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지역 내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마디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격인 것이다. 반면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내에 국회의원 사무실을 두고 정당 활동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시점에 지구당 부활 목소리가 높아질까?
한동훈·이재명 거대 양당 대표는 지난 2일 열린 대표 회동에서 ‘지구당 제도 재도입을 적극 협의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들 두 사람이 지구당 부활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셈법은 서로 다를 것은 불문가지다.
우선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우 동진정책이 가장 큰 이유로 해석된다. 즉, 지난 4월 총선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영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에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영남권 교두보 마련이 필수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당 부활은 영남권 거점 마련을 위한 이재명표 대선 승리전략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반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지구당 부활은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참패하며 국민의힘 당 조직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치러질 지선과 대선에서 사무실조차 설치 못 하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은 휴대전화만 가지고,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을 이용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민의힘 조직이 붕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지구당 부활은 지선·대선에서 민주당 현역의원과 맞서 싸울 성을 구축하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구당 부활은 거대 정당 모두 ‘취약지역 조직강화’를 위한 전략인 셈인 것이다.
이러한 양당 대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20년 만에 지구당 부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지구당 부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운영비 마련의 문제이다. 금권정치의 폐단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당 폐지를 주도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10일 페이스북에 “여야 대표가 함께 추진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여도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면서 “퇴보로 유턴하는 게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인가”라고 비판했다.
물론 오 시장의 이같은 발언은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1, 2위로 나타나는 이 대표와 한 대표를 견제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도 불문가지일 것이다.
즉 이 대표와 한 대표에게 구태정치를 지향하는 인물이란 프레임을 씌우고, 반면 자신은 정치 개혁의 선봉장으로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겠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힘을 받는다.
또한 오시장은 ‘20년 간 정치나 행정 부분에서 이렇다 할 개선이나 힘 있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 처한 상태다.
그런 그가 이번 지구당 부활 문제와 관련 계속 부정적 이유를 투척하는 것은 이를 통해 개혁적인 이미지를 띄우겠다는 전략으로 읽히는 것이다.
물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앞서 9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최근 거대 양당은 정치개혁을 명목으로 지구당 부활에 합의했다”면서 “과거 지구당을 폐지한 이유는 돈 먹는 하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비용 정치와 금권선거가 이제 완전히 사라졌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조 대표는 “지구당 부활은 거대 양당 소속 정치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재가 넘치고 전국적인 조직력을 갖춘 거대 정당과 달리 비례대표 정당인 조국혁신당의 경우 지구당 부활로 이익을 볼 가능성이 그리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당 부활이 중앙당이 지역을 빨아들이는 ‘빨대 효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중앙당과 지구당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 확장이 정치 신인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지구당 설치냐, 지역당 설치냐를 놓고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대 국회에서는 지구당 부활법안과 지역당 허용법안이 여러 개 발의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비례대표)이 지난 7월 25일 대표 발의한 ‘지구당 부활법안’이 있다.
특히, 정당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정당 조직에 현행 중앙당과 시·도당에 더해 국회의원 지역선거구를 단위로 하는 지구당을 추가하며, 시·도당의 당직자 총수를 현행 100명에서 150명으로 확대하고 지구당 당직자를 2인 이내로 규정하여 시·도당 및 지구당의 실질적 활동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당 부활보다 지역정당 설립을 위한 정당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서울 송파구병)은 지난 6월경 국회의원 지역구를 단위로 하는 지역당을 설립하고, 지역당에 2명 이내 유급사무직원, 시·도당에 정책연구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남 의원은 “현행법은 정당의 성립 요건으로 수도에 두는 중앙당 및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규정하고 있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하는 지역당 설립이 불가능하다”면서 “2004년에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지역 주민의 다양한 여론 수렴, 정책 개발 등이 어려워졌고, 지역 정치가 약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주권·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도 지난 8월 21일 입장 발표를 통해 “지구당의 본연의 목적은 정당 내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지역에서 중앙으로의 상향식 정책구조를 가지고, 지역의 인재들이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정치 충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지역에 필요한 것은 중앙당의 도구로서 지구당이 아닌 지역민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지역정당의 설립”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지구당의 부활은 지금의 정당구조를 오히려 공고화하여 지역은 수도권에, 지구당은 중앙당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정치권이 지구당 부활이든, 지역당 설립이든 대선 전략상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어떤 방식이든 추진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