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숨은 스토리] 노잼도시 대전이 꿀잼을 만들고 있다

대전 시민들도 노잼도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대전에 지인이 놀러 왔을 때 관광코스를 설명하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관광코스는 ‘성심당을 데리고 간 뒤 집에 보낸다’로 요약된다.

2021-12-20     칼럼니스트 말쟁이

[뉴스엔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다시 심화되면서 올해 연말도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지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높은 백신접종률을 기반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시도했던 ‘위드 코로나’를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했지만,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라는 제자리걸음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전광역시를 방문하면 성심당을 제외하곤 갈 곳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사진/ 성심당 인스타그램 갈무리

연말을 맞이해 휴가를 쌓아놓은 직장인들은 내심 위드코로나와 백신여권 등의 제도 활성화로 인한 해외여행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언감생심으로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국내 여행은 코로나19 이후 다변화하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관광지를 찾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을 피하려는 심리와 해외여행과 같이 이국적인 느낌을 얻으려는 니즈가 생겨난 것으로 추측해본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 도시가 3차산업인 서비스업을 발달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주된 방식은 관광 활성화다. 꾸준히 지방 도시로 수도권 인구의 관광이 계속돼야 관광객들의 소비로 인해 서비스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방 도시에선 자신들의 특성을 살려 재미있는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관광 테마를 만들기 때문인지 결과물들이 형편없다.

‘○○ 축제’와 같은 이름만 바꾼 동네 사람들도 가지 않을 축제라던지, 올레길을 따라 만든 ‘○○ 길’과 공원에 여러 조각상을 놓은 ‘○○ 테마파크’ 등과 같은 특색없는 콘텐츠만 즐비하다.

지방에 사는 시민들은 나름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마련인데, 이촌향도가 심해지고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극심한 요즘은 이러한 자부심도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자신의 고향이 더 낙후되고 보잘 것 없다며 입씨름이 붙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그중에서도 관광을 하기에 ‘재미없는 도시’로 유명한 곳이 있다. 한반도 남쪽의 중심이자 인구 145만명이 사는 과학과 행정의 도시인 대전광역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살기 좋은 도시로는 손꼽히는 곳이지만 정작 살고 있는 시민들은 “놀 곳이 없다”며 하소연한다.

신조어 중에 ‘노잼’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에서도 흔히 쓰이는 말인데, 영어 ‘NO’와 ‘재미’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노잼을 온라인 백과사전 중 하나인 ‘나무위키’에서 검색하면 “대표적인 노잼의 동의어로 노잼도시 대전광역시가 있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편집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넣을 수 있는 나무위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지만, ‘노잼도시’라는 별칭은 이제 널리 알려진 대전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대전 시민들도 노잼도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대전에 지인이 놀러 왔을 때 관광코스를 설명하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관광코스는 ‘성심당을 데리고 간 뒤 집에 보낸다’로 요약된다.

노잼도시 대전과 ‘성심당’과의 관계는 ‘밈(meme)’으로도 연결된다. 인구 145만명이 살고 있는 도시인 대전이 유명 빵집인 ‘성심당’을 제외한 특출난 관광코스가 없다는 일종의 블랙코미디인 셈이다. 여기에 대전 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팀 한화이글스는 매년 최하위를 기록하는데, 도대체 대전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여기까지 썼으면 마치 대전을 욕하려고 쓴 칼럼 같지만, 사실 대전의 ‘꿀잼’ 요소를 살펴보기 위해 글을 썼다. 꿀잼은 노잼에서 파생된 단어로 ‘진짜 꿀로 만든 잼’처럼 정말 재미있다는 뜻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대전의 꿀잼 소식을 종종 듣곤 한다. 특히 최근 열린 빵축제가 인상적인데, 지난 11월 20일과 21일에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에서 ‘빵모았당’ 축제가 열렸다. 성심당을 중심으로 대전은 빵집으로 유명한데, 빵을 콘텐츠로 잡아 축제를 기획했다는 점이 주목할만 했다.

특히 대전마케팅공사 등이 주관한 이 행사에서 추진위원장의 지역 방송국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김태호 빵축제추진위원장은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꿀잼도시로 만들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대전은 노잼도시라는 별명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대전을 꿀잼도시로 변화시키는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관직에 있는, 기성세대라 할 수 있는 분도 노잼도시를 인식하고 있다면 더욱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대박난 대전의 숨겨진 꿀잼 요소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세계인의 집콕 라이프와 함께 넷플릭스 1위를 연달아 점령했던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대전에서 제작됐다. 이정도면 꿀잼 K-콘텐츠 제작 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옥의 경우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내 실내 스튜디오에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5개월간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오징어 게임은 대전의 스튜디오 큐브에서 줄다리기, 달고나, 구슬치기 등의 장면들이 촬영됐다.

과학의 도시 대전답게 특수영상산업을 지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육성중이다. 이미 대전은 4년 전부터 ‘융복합 특수영상 콘텐츠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하고 투자에 나섰다. 2026년까지 특수영상 클러스터에 기업 80개 유치와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매년 20편 이상의 작품을 공급할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재미난 콘텐츠를 시민들이 즐길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작권과 비용의 문제로 세트를 구현하거나 소품을 사용하는 것이 힘들 순 있다. 하지만 촬영장소였다는 것을 알아도 즐길 콘텐츠가 없으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기생충’의 경우는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집을 지어 저택 세트장을 마련했다가 영화 촬영을 끝내고 허물었다고 한다. 전주는 최근 저택 세트장을 복원하려고 추진중에 있고, 기생충의 반지하 촬영장이었던 경기도 고양시도 복원을 추진중이다.

이처럼 세트장을 다시 짓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지방의 영화 촬영지는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하는데, 전북 군산시의 ‘타짜’ 촬영지는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꿀잼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대전은 언젠가 노잼도시였던 과거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대전을 노잼도시가 아니라 꿀잼도시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