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해지는 동물학대,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경찰청에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914건 발생했다. 이는 지난 2010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반면,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5년간 동물학대 행위 등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사건 접수된 3398명 중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은 1741명이다. 법원에 정식 재판이 청구되더라도 처벌 수준도 낮았다. 정식 재판이 청구된 이들은 전체 3398명 중 93명으로 2%에 불과했다.
[뉴스엔뷰] #. 고양이 사체를 이웃집 지붕에 던진 80대 노인이 검찰에 송치됐다. 숨진 고양이 중 한 마리는 머리 부위가 없고 훼손 정도가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발표를 종합했을 때 A씨는 평소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웃집 주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불만의 표시로 고양이를 학대 및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난 6월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동물 관련 영업 시설의 불법행위를 65건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개농장주 B씨는 전기쇠꼬챙이를 이용해 개를 불법 도살하고 단백질 보충을 이유로 개 사체를 다른 개들에게 먹이로 줬다.
#. 같은 달,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공터에서 새끼고양이 사체가 여럿 발견됐다. 모두 머리가 잘리거나 올무에 묶여 장기가 밖으로 나온 모습이었다. 경찰은 누군가 고의로 새끼고양이를 학대, 살해한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으나 여전히 동물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잔혹성과 범죄 수법의 교묘한 정도는 심화하는 모양새다.
최근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경찰청에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914건 발생했다. 이는 지난 2010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반면,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5년간 동물학대 행위 등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사건 접수된 3398명 중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은 1741명이다. 법원에 정식 재판이 청구되더라도 처벌 수준도 낮았다. 정식 재판이 청구된 이들은 전체 3398명 중 93명으로 2%에 불과했다.
이처럼 동물학대 빈도수는 높아지고 학대 유형도 진화하고 있지만 사건 발생 시 대응체계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피학대동물은 스스로 피해 정도를 입증할 수 없고 대다수 학대가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누군가의 적극적인 신고와 도움, 수사기관의 신속한 초동조치 및 수사가 절대적이다. 피학대동물 긴급 격리 권한을 가진 지자체 동물보호감시원 역할도 크다.
하지만 경찰, 지자체 모두 직무수행 준비 부족, 소극적인 대처 등으로 현장에서 학대 당하거나 또는 당한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현장 관계자는 증언한다.
이에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동물학대 대응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토론회를 열고 동물학대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시급한 문제점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먼저 동물 학대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경찰관들의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1일부터 5월20일까지 국내 경찰관 3235명을 대상으로 전자우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7.7%가 “동물 학대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답했다. "약간 어려운 편이다"는 34.9%, "다른 사건과 비슷하다"가 24.1%로 집계됐다. "매우 쉬웠다"라는 답변은 0.9%에 불과했다.
'동물 학대 사건 수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선 "동물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30.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증거 수집 곤란"이 22.1%를 차지했다. 신고나 고소, 고발 내용의 부실과 동물보호법 부실, 동물의 생태나 습성의 생소함을 꼽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경찰 10명 중 8명이 "사건을 처리하는 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조력이 필요한 내용과 관련하여 전문가 또는 전문기관 풀(pool)이 확보됐냐는 질의에 91.3%가 "아니"라고 답했다. 경찰의 53.6%는 "실제 현장 출동 시 관활 지자체 동물보호담당부서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물학대 사건 착수에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제보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건을 어떤 경로로 접수하게 됐냐'는 물의에 경찰의 73.5%가 "시민과 시민단체의 신고 제보"라고 했다. 순찰 등을 통한 자체 인지, 지자체 및 공공기관의 신고에 의한 접수, 언론과 방송 보도를 통한 접수는 각각 9.3%, 6.2%, 1.8%순이었다.
이혜원 잘키움동물복지행동연구소장은 이와 관련해 "학대접수 이후의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매뉴얼의 부재로 동물보호감시원 뿐만 아니라 경찰에게도 업무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학대 전담 지자체 부서 및 동물보호감시원과 경찰의 협력체계가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순영 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경감 또한 "경찰은 법률상 벌칙조항을 근거로 동물학대 등 범죄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경찰의 독자적인 업무수행에 한계가 있다"면서 "지자체장의 구조, 보호, 출입, 검사 등 적절한 행정권한의 발동과 함께 수사가 진행될 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소유자 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의 동물보호에 관한 인식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며, 동물대상범죄에 대한 독자적인 양형기준 신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한주현 변호사(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는 지자체가 학대행위자로부터 학대동물을 격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 제14조 동물의 구조‧보호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법 제14조제1항제3호에 따르면 지자체는 소유자로부터 학대를 받아 적정하게 치료‧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을 학대자로부터 격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정하게 치료‧보호받을 수 없’는 때에만 격리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돼 있어, 동물을 학대한 소유자가 ‘자신이 적정하게 치료를 하겠다’고 말할 경우 지자체로서는 적극적으로 격리하기 어렵다는게 현장 관계자 말이다. 한 변호사는 “소유자로부터 학대를 받은 것으로 판단되는 동물”일 때 격리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성철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사무관은 “동물보호법 전면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동물보호‧복지 교육프로그램 개발‧보금, 동물보호 교육프로그램을 내년도 초중고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자체 동물학대 지도‧단속 및 동물보호‧복지전담 인력 확충을 위해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추진하고 있고, 동물학대 전담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 주최자인 이은주 의원은 “경찰이나 지자체 동물보호감시원들의 직무수행 준비 부족이나 소극적인 대처, 인력부족 등으로 현장에서 피학대동물을 구조‧보호하는 골든아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토론회에서 나온 여러 문제의식과 의견을 반영해 동물학대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적, 입법적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