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임금명세서 시행령 제정되야”

지난해 민주노총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노동자 3명 중 1명은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했다. 또한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답한 80%가 초과노동수당 등을 받지 못하거나 포괄임금제 등으로 일부 시간에 대한 임금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태조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 현재 ‘작은 사업장(30인 미만 사업장)’의 체불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임금 계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임금명세서 교부가 절실한 상황이다.

2021-05-13     성혜미 기자

[뉴스엔뷰] 노동계가 임금명세서 교부의무 법제화에 따라 제도 안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시행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권 보호와 알권리를 위해 임금명세서를 임금 체불 발생 시 입증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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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를 도입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매년 급여 계산, 구성항목 등과 관련된 노사분쟁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국회의 임금내역서 교부의무화 결정에 노동계는 환영입장을 전했다. 동시에 임금 체불 발생 시 임금명세서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시행령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1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임금명세서 교부의무 관련 시행령을 제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의 경우 임금명세서 교부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을 근거로 안정적인 제도 안착을 위해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뒷받침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민주노총 및 노동단체는 그동안 임금명세서가 없어 임금을 계산할 길조차 없는 답답하고 억울한 노동자를 수없이 만났다. 임금명세서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드러나지 않지만 많은 노동자의 권리가 달린 문제”라며 “임금명세서가 실제로 임금 체불 여부를 밝힐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되도록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충실해 보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지난해 실시한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1천명 실태조사에 따르면 3명 중 1명은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했고 응답자의 80%가 초과노동수당 등을 받지 못하거나 포괄임금제 등으로 일부 시간에 대한 임금만 받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임금 체불 사업장 중 30인 미만은 41.5%, 5인 미만 사업장은 31.7%로 ‘작은 사업장(30인 미만 사업장)’의 체불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임금 계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임금명세서 교부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임금명세서 교부가 미이행되고 있는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의 음성증언을 청취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아래는 순서대로 충남에서 주류배송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 A씨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B씨 이야기다.

“회사에 (임금)명세서를 달라고 했을 때 2, 3번 많게는 3번까지 얘기해야 명세표를 받는 어려움이 있다. 명세표를 받아보면 제가 일한 월급, 수당이 됐든 뭐가 됐든 계산법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다들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노무사에게 상담을 받아봤지만 이들도 계산을 못하더라. 꼭 확인하고 싶으면 회사 사무실에 직접 방문해서 회사 총무를 졸라야 한다. 그렇게 받은 명세서 또한 계산법을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팀장에게 특근이나 야근 수당이 어떻게 적용되는 지 물어본 적 있는데 그냥 ‘포괄임금제’ 라고만 했다. 왜 사람들이 그걸 모르느냐고 화를 내서 더는 못 묻겠더라. 상여금도 어떻게 계산되는지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다. 예를 들어 연차를 많이 안 쓰면 상여금이 더 많이 나온다. 이 정도만 알지 그것도 정확히 진짜인지 계산할 방법이 없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는 임금 체불 시 사업장에 대한 노동부 진정 제기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도 높았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 상담 과정에서 체불 임금 사업장에 대해 진정을 제기하려고 하면 임금내역서 때문에 난감한 경우가 꽤 많다. 노동자에게 지급한 임금 중 연차, 잔업, 야간 수당 등이 빠져 있지 않은 지 확인하려고 하면 사용자가 교묘하게 임금 대장을 조작해서 노동부에 제출하기도 한다. 심지어 출퇴근 기록카드를 조작하는 사용자도 있다”면서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보장된 임금 계산 법을 모르는 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숱하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내역서가 없으니 하소연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화는 이 같은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노동자가 직접 임금을 계산하기 쉽도록 출퇴근 기록 의무화, 표준전산시스템 도입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강성회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급여명세서는 내가 한 달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 대가로 얼마의 임금을 지급 받았는지, 임금체불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자료”라며 “단순히 임금 항목과 각 항목별 액수만을 기재토록 하는 것은 아무런 의무가 없다. 급여명세서는 노동자가 명세서만 보고서도 내가 몇 시간 일했고 그에 따라 얼마의 임금이 지급된 것인지 한눈에 보고 알 수 있어야 본연의 기능을 다 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급여명세서는 지난달 몇 시간 노동력을 제공하였는지, 연장 및 야간근로는 몇 시간 수행하였는지, 통상임금은 얼마이고 그에 따라 각종 법정 수당은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만일 인센티브나 상여금이 지급된다면 인센티브나 상여금의 지급기준도 기재될 필요가 있다”면서 “위와 같은 내용이 급여명세서에 기재되기 위해서는 수기로든 전자 방식으로든 출퇴근 기록을 의무적으로 남기도록 하는 것이 역시 제도적으로 갖춰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 외에도 ▲표준임금명세서 통한 기준 제시, ▲법 시행 관련 사용자 교육 및 노동자 권리 홍보, ▲급여명세서 미교부 사업장에 대한 신고 및 근로감독 진행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내용을 의견서로 취합, 가까운 시일 내 고용노동부에 전달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