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원금에 일주일 뒤 50만원 갚아라 요구
돈 갚지 못하자 주변에 전화해 협박까지...
정부 불법사금융과의 전쟁 선포했지만 실효성 의문

[뉴스엔뷰] 이른바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압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촬영케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정보’를 통한 협박 때문이었다. 조주빈 등은 공익근무요원들을 통해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알았고,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피해자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가해자들이 원하는 행위를 이어가야 했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범죄행위는 ‘N번방 사건’에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35세 A씨는 대부업체에서 개인정보를 이용한 협박에 하루하루 초조한 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인터넷 대출 플랫폼 사이트를 통해 고금리 사채에 손을 댔다. 급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200만원의 금액을 대출하려 했지만 업체 측은 “첫 거래이니 신용이 중요하다”, “먼저 30만원을 빌려주고 50만원을 일주일 뒤 갚으면 신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만원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가족과 회사 등 A씨 주변인물의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여기에는 A씨 자녀의 어린이집, 초등학교는 물론 담임교사의 번호까지 포함돼 있었다. A씨는 업체를 통해 30만원의 금액을 받았고, 약속한 날짜에 5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업체는 말을 바꿨다. 신용조회를 해보니 200만원의 대출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한 주만 더 30만원을 빌려줄테니 다음주에 50만원을 갚으면 향후 200만원의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A씨는 다시 업체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인터넷 대출 플랫폼 사이트를 통해 다른 대출업체에도 연락을 했다. 대출의 방식은 같았다. A씨는 7곳의 대출업체에서 총 210만원의 대출을 받았고, 일주일 뒤 350만원을 갚아야 했다.

“급하게 200만원을 만들기는 했지만, 고금리라는 또 다른 덫에 빠지고 말았다. 제 날짜에 돈을 내지 못하자 연장비 명목으로 16만원을 내라고 했다. 연장비는 원금과 이자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냥 내는 것이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연장비 마저도 내지 못하자 주변에 전화를 해 채무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정말 사정을 말하고 빌다시피 이야기 했다. 시간을 달라고. 하지만 그들은 가족에게 전화해 욕설을 퍼부었고, 큰 딸의 담임교사, 작은 딸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에게까지 전화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잡기 힘들다’는 내용 뿐이었다. 경찰이 그 자리에서 업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불법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며칠뿐이었다. 번호를 바꿔 전화했다. 아이들과 부인이 불안해 한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다”

정부 불법사금융과의 전쟁 선포

정부는 지난 24일 6.29일부터 연말까지를 “불법사금융 특별근절기간”으로 선포하고, 예방과 차단, 단속·처벌, 피해구제 등 즉각적인 조치와 제도개선을 병행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불법사금융의 사례‘에는 A씨가 겪은 이른바 30-50 대출이 포함돼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은 30만원을 대출하여 1주일 뒤 50만원 회수하고 반복, 고액을 유도하는 불법 대출을 지속한다. 또한 이 같은 불법을 이용하는 이들은 저소득자, 가정주부, 무직, 노령층 등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으로 불법 채권추심도 빈번히 발생한다. 빚을 내거나 제3자를 통한 채무변제를 강요하는 등 악질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무등록 대부업자가 받을 수 있는 법상 이자 한도를 현행 24%에서 6%로 낮춘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현재 무등록 대부업자는 영업 자체가 불법인데도 대부업법상 합법적 금융업자와 같은 수준의 최고금리(24%)를 받을 수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조치다. 6%를 넘는 이자 지급분은 원금 변제에 충당하고 원금 변제 후 남은 금액은 차주가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등을 통해 반환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법상 상업을 영위할 때 받을 수 있는 금리가 6%”라며 “불법 사금융은 원금 이외에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법체계와 연관성, 과잉 금지 원칙 등 고려해 6%로 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공적 지원(정부·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등)을 사칭하는 불법 대부광고 처벌 근거를 보강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금융위는 오는 29일 불법 사금융 이득 제한, 처벌 강화 등을 담은 대부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연내 국회 제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금리와 불법 추심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도 나왔다. 정부는 온라인 구제신청 시스템 개설과 ‘찾아가는 피해 상담소’(전통시장·주민센터 등) 운영해 피해자 맞춤형 연계 지원을 할 계획이다.특히 법률구조공단은 고금리·불법 추심 피해자에게 맞춤형 법률 상담과 채무자 대리인·소송 변호사를 무료로 지원한다.

또 다시 제기된 실효성 논란

정부의 이 같은 발표를 두고 A씨는 “실효성은 둘째 치고 이것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N번방 사건을 비유로 들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모든 결과물이 다르지만 방식은 같다고 생각했다. 조주빈 등은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얻어냈다. 나와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들의 개인정보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손에 들어간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급한 돈을 얻기 위해 개인정보를 넘긴 것이다. 그리고 이후 방식은 똑같다. 협박, 더 많은 이자, 더 많은 연장비. 굴레에 빠져 든 것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은 2차 피해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들의 영상이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조주빈 일당 등이 잡힌다 한들 이 상처가 낫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당사자는 너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사채업자들이 잡힌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정보때문에 채무 사실은 물론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협박당하고 괴로워했다. 이유가 뭐였든지 간에 내 책임이 있다. 나는 그 사채업자를 신고했지만 대포폰, 대포통장을 사용해 추적이 힘들다는 수사기관의 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른 번호로 연락이 온다. 또 다른 대포폰인 것이다”

대부업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실상 단속 자체가 미등록 대부업체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불법적인 행위는 미등록 뿐만 아니라 등록업체에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밝혔다. 그는 “법안이 마련되고 실행되고, 보완되고는 하지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 신고 건수도 늘었다”면서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가장 효력이 좋은 것은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 신고 자체를 익명으로 해야 하는부분이 필요하다”면서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려고 해도 이름이 알려지면 다시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시도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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