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국가보훈처가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순국 80주년 추모식을 거행한다.

 

윤봉길 묘역에서 열리는 이번 추모식은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고 박승춘 보훈처장, 독립운동단체장,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 사진=뉴스1


추모식은 학생대표의 어록봉독,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 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 등에 이어 헌화, 분향, 추모가 등 순으로 진행된다.

 

충남 예산에서 1908년 6월21일 출생한 윤봉길은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해 학교를 자퇴하고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7년에는 구매조합을 조직해 농민의 경제자립을 추구하고 독서회(讀書會)를 통해 문맹퇴치에 힘쓰기도 했다.

 

윤 의사는 1928년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고 1929년 월진회(月進會) 조직을 통해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6일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2년 봄에 상하이 홍커우 일대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인교포단장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난 윤봉길은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토론하며 의열투쟁의 기회를 엿봤다.

 

그러던 중 4월29일 일본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홍커우공원에서 거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준비했다.

 

1932년 4월29일 윤봉길은 김구로부터 받은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 1개를 투척해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이로써 한국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한국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본경찰에게 잡힌 윤봉길은 그해 5월25일 상하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1월18일 일본 오오사카 육군 위수 형무소에 수감됐다.

 

12월19일 오전 7시40분 교외에 있던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사형이 집행돼 순국했다.

 

25세 나이로 이국땅에서 순국한 윤봉길의 유해는 1946년 일본에서 박열, 이강훈 등 주선으로 한국으로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윤봉길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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