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한아타 논설위원] 이전에 3부에서 이야기한 대로, 뉴질랜드의 기성세대들이 만든 열악한 사회 현상으로 인해 여성의 권위가 올라가는 듯 했지만 오히려 불리한 결과가 발생했다. 뉴질랜드 여성들은 결혼을 건실한 뉴질랜드 남성들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성실하고 착한 뉴질랜드 남자들은 다수가 해외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생각 있는 뉴질랜드 남성이라면 뉴질랜드 여성과 결혼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권리를 지킨다던 '페미니즘'의 아이러니

여성들에게 발언권을 빼앗기고 자칫하면 여성들에게 월급의 80%를 양육비로 빼앗길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뉴질랜드 남자들은 나라를 떠나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다. 결국 뉴질랜드에 남아 있는 남성들은 뉴질랜드 여성들에게 변변치 않아 보이는 그저 그런 남성들, 저학력에 저소득층 남성들이 다수였다. 어떤 남성들은 걱정 근심이나 미래에 대한 대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뉴질랜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고학력자들이 백수 남자들을 감지덕지 받아들이며 모시고 사는 나라처럼 되어버렸다.

이것이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려고 했던 여성 기성세대들의 노력에 반하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20대 여성이 20대 남성을 연인으로 만날 확률은 매우 희박 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뉴질랜드 20대 여성이 20대 남성을 만날 확률은 미국의 80대 할머니가 80대 할아버지를 만날 확률보다 떨어진다고 조사되었었다.

2, 30대 신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항한 이유

결국 뉴질랜드에 기성세대들이 망쳐놓은 이런 현상을 뉴질랜드의 어린 여성들, 그러니까 20대 여성들이 바꿔 가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뉴질랜드 40세 이상 여성들은 여전히 급진 페미니스트였다. 이들은 여전히 양육비로 생활을 하고, 관광객들과 부적절한 섹스를 즐기며 살고 있었다. 그녀들의 남편은 어느 정도 사회적 자리를 잡았다 할지라도 월급의 80프로를 뜯기고 있었기 때문에 탈출을 하고 싶어도 다른 나라로 나갈 수 없는 입장 이었다.

문제는 30대 이하의 어린 여성들이다. 정상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 모두 떠난 상황에서 이 어린 여성들은 기성세대들, 그러니까 엄마 세대들이 특권을 누리는 삶을 살래야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떤 방법으로든 타개해야 할 입장이었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것은 기존 어머니 세대에 대한 반대 혹은, 대항이었다. 그렇게 기성세대들이 만든 시스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 불어 닥친 때 아닌 남성 정치 '바람'

새로운 신세대 여성들은 남성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기 시작하게 되었다. 신세대들이 내적인 환멸을 느낄 정도로 기성세대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주 오랜만에 뉴질랜드 총리로 남성 총리가 당선되었다. 남성 총리가 한 가장 먼저 한 일은 양육비 지원 시스템을 남편에게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합산 소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녀 양육비용 총액을 급여의 28%로 파격적으로 줄이는 법을 통과시켰다. 또한 남성이 소득이 없는 여성과 이혼할 경우 소득이 있는 남성에게 양육권을 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이전의 골수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사회현상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30대 이하 여성들이 반 페미니스트로 돌아섰기 때문에 사회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로 여성부가 생긴 뉴질랜드의 페미니스트들이 겪고 있는 현 주소 이다. 현재 뉴질랜드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대결을 줄이고, 공동의 권리를 존중하며,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타파해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의 여성부가 생긴 것은 뉴질랜드가 여성부가 생긴 한참 이후의 일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뉴질랜드가 이미 앞서 겪었던 그 부작용들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상태는 대결을 뛰어넘어 여혐, 남혐의 사태를 맞고 있다. 수많은 해외 여성 연예인들과 유력한 여성 사회 인사들이 페미니즘을 반대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서구에서 부작용을 일으킨 사회현상으로의 회귀를 목도 해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나는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겠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사회현상으로의 페미니즘이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의 페미니즘은 전적으로 여성들의 권리 존중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울어진 저울 추는 그 어떤 것으로도 평등을 만들어낼 수 없다.

기왕에 기울어진 저울 추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반대쪽에 지나치게 편향적인 프레스를 가해야 한다는 비틀어진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들은 온건 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사회적인 합의와 대화와 타협이 없다면 제 아무리 정당하다고 나름 생각되는 방향성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다.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인가? 페미니즘은

군가 선택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혹시 남녀평등 그 자체와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서구에서는 녹슨 칼이 되어버린 페미니즘을 사회적 평등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칼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좀 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적 관점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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