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많은 남성들은 궁금해 한다. 여자들이 성적 수치심 내지는 불쾌하다고 느끼는 그 범주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연히 모임에서 어울리면서 들뜬 분위기에 사진 찍으며 자연스레 어께동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가만히 있던 사람이 일반의 다른 자리에서는 민감해 하더라며 도대체가 여성이 말하는 그 불쾌감이 뭔지 종잡기 힘들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가다간 그 애매함으로 여성이 남성을 역이용하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하기도 한다.

성적인 불쾌감에는 성별의 다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가능성을 전혀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이 말하는 수치심에는 나름의 일관된 가이드라인이 있다. 심지어(?) 이런 가이드라인은 비단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도 일관되게 이 가이드 안에서는 불쾌한 느낌이 들게 되어 있다.

다만 이 경우, 남자는 상대적으로 볼 때 대개 물리적 강자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상대에 대해 느끼는 불쾌함을 다르게 정의한다. 게다가 여성은 본질적으로 민감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남성에게 사실이 더 중요하다면, 여성에게는 사실이 불러온 감정이 더 중요하다.

여성이 그러하듯, 만약 어떤 여성이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을 한다면 남성 역시 화가 엄청 날 수밖에 없다. 얼마의 감도나 정도, 혹은 시각의 방향성 차이를 제외하면 남녀가 느끼는 폭발할 것 같은 그 불쾌함은 모두가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만약, 앞서 언급했던 가이드를 모두가 알고 있다면 남성(여성)들도 서로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나름 품위 있는 관계 안에 서로에게 불필요한 피로감이나 피해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제 그 가이드 라인을 살펴 보자.

상대가 나를 이성으로 대하는 생뚱맞은상황

잠시, 생각해 보자. 눈앞에 있는 여성 혹은 남성은, ‘상대방(눈앞의 그들)’이 생각하기에 나를 연인 관계나 그런 연인으로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사람으로 여기고 있는가? 그게 아닌데 내가 를 혹은, ‘그녀를 그런 관계나 여지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대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상대는 움찔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물리적 약자인 여성은 더 경계하거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남성은 문제가 생길 듯해도 물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걸 의식적으로 느끼든 못 느끼든, 이 경우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방치하는 허용치가 여성과는 확실히 다르다.

전혀 여지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서 생뚱맞게’ ‘이성관계로 느끼는 듯한 발언이나 행동이 나오면 불쾌감이나 수치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냥 친구, 그냥 직장 동료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그런 조짐이나 암시가 느껴진다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저항감이 들 수밖에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남녀의 차이는 생물학적차이이다. 연인이나, 연인으로 발전할 여지를 갖지 않는 인간관계 내에서 이런 생물학적인 차이가 하나의 도구화 된다면 그건 남녀를 불문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내가 누군가를 이성으로 느끼더라도, 그것을 생뚱맞게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동일하게 그럴 마음과 여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느냐이고 그 감정의 표현은 허락된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뚱맞음의 원칙은 단순히 예쁘다거나 잘 생겼다고 말하는 것, 혹은 느닷없는 프로포즈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혹자는 왜 자신이 예전에 딱지를 맞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칙은 단순히 미투(#metoo)’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모든 이성 관계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인간적 부끄러움의 경계를 철저히 지키라

개인적으로 동행숲 네트워크라는 환경 관련 단체의 활동을 하면서 가끔씩 생각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하는 점이었다. (‘동행숲동물이 행복한 숲의 약칭이다.) 동물이 인간과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의 이면에 굳이 그들과 나와의 차이를 생각한 이유는 그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그들에 대한 합리적인 배려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건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서로를 더 배려감 있게 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각설하고, 동물이 인간과 다른 것 중 하나는 성에 대한 부끄러움의 인식이다. 단적으로 동물은 훤히 드러난 노천에서도 쉽게 섹스를 하고 인간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섹스를 한다. 인간의 성생활을 동물의 교미라 부르는 그 무엇과 비교를 하자는 게 아니고, 철저히 생물학적 특징으로 고려해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는 성과 관련해 자신과 관련된 정보들은 숨기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남자들이 함께 모여 개걸스럽고 질펀한 성적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주부들이 낮시간 모여 자신의 남편의 신체 특징을 들먹이며 나누는 왁자한 성적 수다가 불편하고 불결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같다. (참고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와이프의 신체적 특징을 들먹이거나 아내와의 침실 이야기를 농담거리로 삼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가 혹여라도 나오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못난 남성취급을 받는 암묵적 동의가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남성은 대개 섞이지 못하고 왕따취급을 받는다.)

숨어서섹스를 하는 인간의 그 본성은 자신의 성적인 개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애인이 있다면 스킨십의 진도는 어느 만큼 나갔는지, 동성에게 끌린 경험이 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의 신체적 특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인간은 폐쇄적인 것이다. 그런 것을 드러내는 경우는 자신과 아주 친한 사이이거나 자신이 조언을 구할 만큼 믿음직한 사람일 경우에 한한다.

이런 인간적 부끄러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대의 질문이나 호기심의 표현이 바로 성희롱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바로 미투(#metoo)의 직접적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이같은 일종의 정보를 내가 허용하지 않는 어떤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데, 이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면 불쾌감이 들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호기심의 발원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일 때도 동일하게 불쾌감 게이지가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성희롱은 이성적 관심에만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1. 상대가 나를 이성으로 대하는 생뚱맞은상황을 인간은 싫어한다.

2. 인간은 본성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성()의 경계가 잘 지켜질 때 안정감을 느낀다.

여기에 더해, ‘물리적 강자가 부릴 수 있는 고압적 부자연스러움과 약자의 횡포로 빚어질 수 있는 다분히 전략적이고 비열한 태도가 사라진다면 사회는 보다 건강한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남녀를 초월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한 각자의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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