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변종필의 '아트 비하인드'

[뉴스엔뷰] 인맥, 총격, 빈부, 스캔들, 재판, 장애, 편지, 사과(과일), 패러디, 표절 등 예술가들의 은밀한 삶을 공개한 책이 나왔다. 다양한 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저명 화가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고나 할까.

뜻밖에 우편을 통해 지난 9월 중순 집으로 배달된 책이라서 추석연휴를 통해 재미있게 읽었다. 화가들의 낯선 뒷모습을 다룬 변종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미술평론가가 쓴 <아트 비하인드>(아트, 2017년 8월)라는 책이었다. 평소 잘 아는 한 지인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저자에게 책 선물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저자와는 일면식 없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어쨌든 <아트 비하인드>는 르네상스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무크, 앤디 워홀, 고흐, 루소, 고갱, 피카소, 이중섭, 김홍도, 장욱진, 손상기 등 동서양과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들의 예술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했다. 

특히 저자는 지난 2014년 5월부터 한 매체에 연재한 칼럼 중 39편을 골라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각자의 꼭지는 비교대상 화가 39쌍을 한데 묶어 소개했다.

표지

불치병과 장애, 인맥 등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비교했고, 비슷한 주제의 다양한 관점 등 화가들의 작품과 작품을 소개했다. 또한 진품과 위작, 패러디와 표절, 진실과 거짓 등 미술사에서 끊임없던 논쟁들을 비교했다.

저자가 맨 처음 소개한 툴루주로트레크와 손상기는 신체장애를 극복하며, 짧은 생에 동안 영혼의 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이다. 육체적 한계를 극복했고 현실을 중시하며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회화로 표현했다.

동서양 미술계를 통틀어 인맥의 종결자는 누구일까. 바로 마네와 김홍도이다. 마네는 오토 숄테레, 자샤리 아스트뤼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밀졸라, 에드몽 메르트, 프레데리크 바지유, 클로드 모네가 등 당대 저명한 인상파 화가 그리고 지식들과의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김홍도는 정조라는 절대 권력을 등에 업고 예원의 총수 강세황을 스승으로 모셨고, 사대부와의 돈독한 관계 그리고 한양 제일의 갑부 김한태·김광국과 같은 후원자들은 물론, 김웅환, 이인문, 이명기 등 동시대 화가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화가 장욱진과 스위스의 화가 클레는 어지럽고 복잡한 내면을 비우고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함을 그림으로 표현한 공통점이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동화 같은 자유로운 상상과 기하학적 순수형태로 이루어진 조형방식은 물론이고 독자적 작품세계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유사점이 많다고. 말년 장욱진은 한층 간결한 필치와 자유로운 구도로 작품세계를 정립해 갔다면, 클레의 말년은 심한 우울증세가 나타나면서 고생스러웠다고 썼다.

저자는 사랑과 예술이 담긴 그림편지의 주인공으로 서양의 반 고흐와 동양의 이중섭을 꼽았다. 이중섭(1916~1956)과 반 고흐(1853~1890)를 비교해보면 짧은 생애, 불행한 죽음, 주옥같은 명작, 열정과 재능 등은 닮은꼴이다. 그중 많은 편지를 남긴 부분이 다른 화가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공통점이다.

반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900여 통을 편지를 남겼다. 이중 정신적 동반자이고 물질적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668통이다. 고흐는 작품의 제작과정과 색채, 구도, 작가관 등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게 그림엽서 100여점과 편지 38통을 보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림엽서는 결혼 전 4년간의 연애시절 보낸 사랑의 징표이고, 편지는 전쟁과 가난으로 생이별한 후 주고받은 것으로 가족을 그리워했던 그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는 누구일까. 저자는 파블로 피카소와 마르셀 뒤샹을 언급하고 있다. 피카소는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고 뒤샹은 작가들의 정신적 우상이었다며. 피카소가 입체파 리더로서 성공가도를 달릴 때, 뒤샹은 입체파의 조형성을 뛰어넘는 혁명적 기질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술경매시장 최고의 인기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피카소와 생계를 위해 작품 판매를 혐오했던 뒤샹의 작가 정신은 미술사에서 가장 대비되는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일반적 그림 '정물화의 시조' 장 바티스 시메옹 샤르댕과 '세잔식 정물화'로 독창적 작품 세계를 정립한 폴 세잔은 정물화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인물이다.

책에 따르면, 사르댕은 사물의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정물화의 폭을 넓혔다. 반면 세잔은 정물화를 깊이 연구해 어떤 다른 장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예술성을 입증한 화가이다. 

세잔은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고, 그의 말을 뒷받침한 듯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는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세잔이 밝힌 '사과로 프랑스를 정복하겠다'는 사과는 세상을 바꾼 과일로 상징화되고 있다.

"사과로 창조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한 화가가 세잔이다. 아담, 파리스, 빌헬름 텔, 아이작 뉴턴, 폴 세잔,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사과이다. 아담이 금단의 사과로 밝힌 선악과부터 파리스 손에 쥐어진 황금사과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결정하는 증표였고, 부당한 권력의 압박에서 풀려나고자 한 빌헬름 텔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놓고 상대해야 하는 과녁이었다. 뉴턴에게 사과는 질량을 가지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음을 밝혔고, 하룻밤 사이에 2000억 원을 벌어 이목을 집중시켰던 잡스의 사과(애플)는 부와 명예를 안겨 준 브랜드였다. 폴 세잔이 그린 정물화 사과는 현대미술의 출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사과는 시대에 따라 상장성이 다양한 과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 분문 중에서

이렇듯 이 책은 지적 즐거움, 사랑과 행복, 권력과 돈, 출세와 명예, 꿈과 희망 등 예술가들의 과거의 삶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에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저자 변종필은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사학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저서로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 <손상기의 삶의 예술> <한국현대미술가 100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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