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나한, 마애석불, 맷돌 ,나한전 등 볼거리

[뉴스엔뷰] 인천 강화군 석모도 해수관음 성지 보문사에서 마애석불좌상과 오백나한, 신라시대의 맷돌, 석실인 나한전 등 우리민족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신답동에서 평소 친한 두 명의 지인들을 만났다. 이날도 섭씨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였다. 한 지인이 요즘 강화군에 있는 석모대교가 개통돼 보문사로 가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며, 한번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보문사 경내

가정사와 회사일로 여름휴가를 가지 못 한터라 귀가 솔깃했다. 내친김에 지금 떠나자고 했다. 바로 세 사람의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 지인이 몰고 온 승용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석모도로 향했다. 서울 신답역에서 출발해 김포를 거쳐 강화군 내가면과 삼산면을 잇는 석모대교 입구에 도착해 하늘을 보니 구석구석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녔고, 석모대교 밑은 고깃배들이 교통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서울 성동구 신답동에서 석모도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렸다.

 과거 석모도를 가려면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삼산면 석포여객터미널에 내려야했다는 것이다. 석모도는 불교 제1관음성지 보문사(普門寺)가 있는 곳으로  영험이 있어 평소 불교 신도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석모대교

현재는 육지인 강화군 내가면과 석모도의 삼산면으로 연결된 석모대교로 인해 배를 타지 않고도 쉽게 갈수 있는 곳이다. 지난 6월 28일 1.5km 길이의 석모대교가 개통돼 현재 50여 일째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강화군 내가면 외포여객터미널과 석모도 석포여객터미널을 오갔던 여객선들은 이곳 바다에 그대로 떠 있었다. 여객선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석모도에 도착해 바다를 끼고 보문사를 향했다. 석모도 주변은 여러 섬들이 둘러싸여 있다.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 말도, 교동도, 미법도, 서검도 등이다. 특히 이들 섬들은 인천광역시에 편입돼 있는 섬으로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석모도의 관광지로 해수관음 보문사를 비롯해 어류정항, 민머투해변, 해명산(327m)과 삼봉산(316m), 미네랄 온천, 석모도 자연휴양림, 석모나루 등도 가볼만 한 곳이다.

석가산에서 바라본 석모도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사 정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매표소에서 표를 사 일주문을 통과했다. 연등이 줄지어 연결돼 있었다. 절 안 물건을 파는 상점 벽면에 쓴 “올해 삼재가 낀 개띠, 말띠, 범띠들은 삼재 소멸을 위해 수수, 찹쌀, 초를 올리세요”라는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해수관음 성지는 강화 보문사를 비롯해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을 꼽고 있다.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 의미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것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주문에서 감로다원을 지나 경내에 있는 오백나한, 와불전, 나한전(석실), 용왕전, 삼성각, 극락보전, 법음루, 범종각, 혜중전(종무소), 봉향각 등을 둘러봤다. 

오백나한상

특히 이곳 오백나한은 지난 2009년 와불전과 천인대에 조성됐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이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크기가 넓어 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해 천인대라고 불렀다. 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을 해 더 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한의 좌대에는 봉안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석실 나한전
맷돌과 향나무

 

와불전의 와불(臥佛)은 열반한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본래 보문사에 있는 천인대라는 바위에 새겨 조성했다. 천인대(千人臺)는 이 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천인대로 날아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됐는데, 앞서 밝힌 대로 바위에 천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해 천인대라고 했다. 전각의 내부는 부처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다.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依),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운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모양으로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됐다. 1980년 조성을 시작해 2009년 3월 완성됐다. 너비 13,5m 높이 2m이다.

나한전(석실)은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했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해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했다. 이들 석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어부의 그물에 올려진 석불들은 꿈의 현몽대로 안치해 큰 복락을 누렸다는 것이다. 넓이가 97평에 달하는 천연동굴 석실사원인 나한전은 동굴 안에 23개의 감실을 마련해 석가모니불, 미륵, 제화갈라 보살님과 나한상을 안치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 지정돼 있다.

극락보전
마애석불 올라가는 계단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한 보문사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 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 배 정도 큰 화강암이다. 인천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돼 있는 보문사 향나무는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밑동지름이 2.1m이며, 높이 1.2m, 부위의 둘레가 3.2m 정도이다. 나무가 생긴 모습이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다. 1.7m 높이에서 원줄기는 동서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동쪽 것은 둘레가 1.3m이고, 서쪽 것은 둘레가 1.5m이다. 6.25 동란 중에 나무가 죽은 것같이 보이다가 3년 후에 다시 소생했다.

보문사 중심에 있는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 60평 규모로 1972년 정수 스님이 중수했다. 법당 내부 상단에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제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 영가단이 모셔져 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삼천 옥부처님이 있어 법당에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삼존불 위로는 닷집이 조성돼 있다. 천정의 좌우로 각 하나씩 용상이 지나다니고, 또 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무늬 문살로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다.

마애석불
마애석불 올라가는 계단

극락보전을 둘러보고, 마애석불로 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날씨가 더워 이마에 땀이 억수같이 쏟아졌다. 마애석불로 올라가는 계단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고, 이 길을 두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한 스님이 귀띔했다. 계단 양편으로 연등이 이어졌다. 이곳 마애불 소원지는 100일 동안 소원을 빌면 100일후 축원과 더불어 소전의식이 봉행된다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 보문사 마애석불 좌상에 도착해, 두 손 모아 삼배를 드렸다. 마애석불 좌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돼 있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회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했다.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높이 9m, 너비 3m에 달하는 큰 규모로 조성돼 3대 관음성지이며 기도영험으로 알려져 있다. 

불상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아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받침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진 양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 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을 보면서 보문사가 관음보살의 성지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애석불에서 밑을 보니 석모도가 한눈에 들어 왔다.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 멋진 모습을 자아냈다. 더운 날씨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산꼭대기 마애석불까지 올라오니 에너지가 많이 소비돼 배가 고파왔다. 절 밖으로 가는 길 경내 봉황각 벽면 천에 쓴 글귀가 마음을 솔깃하게 했다.  

“착한이 에게는 축복의 촛불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애정의 등불을, 병고에 시달리는 이에게는  쾌유의 촛불을, 불교를 모르는 이에게는 인연의 등을, 모든 영가에게는 왕생극락의 촛불을, 소원성취하세요.”

더운 날씨에 보문사 경내는 물론 마애석불을 봤다는 자체가 소원성취인 셈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관음성지 보문사는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낙가산에 자리하고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 이곳에 와 절을 창건했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산 이름을 따 낙가산(해발 235m)이라고 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해 절 이름을 보문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보문사 경내를 나오니 오후 5시 30분쯤 됐다. 승용차를 타고 석모도를 둘러봤다. 바다를 개간한 농지, 예쁘게 단장된 펜션, 항구의 고깃배, 인근 섬 등을 보면서 석모대교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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