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최운산장군 순국 72주년 추도식 겸 기념사업회 1주년 기념식

[뉴스엔뷰]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주역 최운산 장군.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일생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고 의롭게 살고자 했으니 부끄러움이 없다. 시대가 격변하고 있고, 너희 형제들이 지금은 모두 고초를 겪고 있지만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염려 말라. 우리나라는 곧 해방이 될 것이다.” - 독립군 최운산 장군(1885~1945). 
 
최운산 장군 순국 72주년 추도식 겸 기념사업회 창립 1주년 기념식이 5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주최, 국가보훈처,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1부 최운산장군 순국 72주년 추도식에 이어 2부 기념사업회 창립 1주년 기념식 순으로 진행된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최운산 장군 약사 보고, 내빈 추모사 순으로 이어진다. 1주년 기념식은 인사말, 기념사업회 활동 보고, 기념강연, 만찬 순으로 진행된다. 
 
윤경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최운산장군은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횃불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이끈 군무도독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 세 무장부대를 창설한 실제 주역으로서 우리나라 무장독립운동사의 숨은 영웅”이라며 “민족을 위한 숭고한 뜻을 실천하다 1945년 7월 5일 순국하신 최운산장군 72주기를 기억하고, 기념사업회 설립 1주년을 기념한다”고 이번 행사의 의의를 밝혔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최운산 장군의 후손인 최성주 생명미디어센터 대표는 “최운산 장군은 형님 최진동 장군, 동생 최치흥 선생과 더불어 만주에 항일 독립군부대 <군무도독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를 창설하여 봉오동대첩과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끄셨다”며 “1924년~1926년 3년간 첫 옥고를 치른 것으로 시작하여 1939년 10개월간의 투옥까지 일생 동안 모두 6차례의 투옥과 고문을 당하셨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매번 수레에 실려나오셨지만 몸이 회복되자마자 곧바로 변장을 하고 이름을 바꿔 다음 활동을 시작하셨던 강철 같은 분이셨다”며 “해방을 한 달 앞둔 1945년 7월 5일, 고문휴유증으로 순국하셨다”고 회상했다. 

최운산 장군의 손녀인 최성주 생명미디어센터 대표.

최 대표는 “그동안 왜곡되고 잊혀진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도서관에서 역사 자료를 찾고, 역사학자들을 만나고, 봉오동에 가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저희도 몰랐던 자료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봉오동 선산에서 증조부 묘소를 찾고, 할아버지 집터를 발견하, 봉오동전투의 현장을 찾아 당시 독립군들이 매복했던 참호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고 그간의 노력을 밝혔다. 
 
최성주 대표는 “정말 감동적인 순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역사학자들과 학술세미나를 열어 만주 독립운동의 진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며 “최운산 장군께서 스스로 역사의 문을 열고 세상을 걸어나오시는 것 같은 지난 1년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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