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이진우 [논설위원]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엄석대'라는 한 시골 초등학교 급장이 등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공부도 전교 1등이고, 체격도 건장하고 힘도 세고, 급우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통솔력까지 갖추고 있죠. 그야말로 슈퍼맨이고 속된 말로 '레전드 급' 영웅입니다.

 

사진: 나무위키

 

그러나 6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놀라운 성적이 사실은 '시험지 바꿔치기'의 산물이고, 그의 일사불란한 리더십과 추진력도 폭력에 대한 공포심에서 비롯된 강요된 복종이자 침묵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레전드'가 무참히 깨지면서 그를 둘러싼 가식과 거짓은 봇물 터지듯이 드러납니다. 결국 엄석대는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퇴장합니다.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짱 '기태'도 비슷한 과정을 겪죠. 그에게 순종적이었던 한 급우가 전학을 결심하고 정면으로 그에게 대들면서 그를 중심으로 촘촘히 구축된 질서에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균열이 생기자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반대의 선봉에 서게 되고 궁극적으로 그는 완전히 설 자리를 잃어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택합니다. 자신이 만든 질서를 자신이 파괴했다는 절망감 때문에…

 

현재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천막 당사'(당 혁신)와 '선거 불패 신화'의 민낯이 이번 '박근혜-최순실 권력농단 게이트'로 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것도,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일사불란한 리더십까지도… 이 모든 것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추악한 권력의 악취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진실과 영혼이 결여된 거짓 이미지…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침묵과 굴종… 이러한 것들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거짓과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 오직 힘과 배타성에만 의존한 권력… 이것이야말로 오랜 기간 곳곳에 잠재적 적(敵)을 만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옥죄게 됩니다. 친박에 의해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한 당내 비주류 세력… 높은 지지율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관료집단… 광고 중단 압박과 고소 고발로 손발이 묶였던 방송과 언론… 침묵의 카르텔로 인해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 사회…

 

 모든 세력들이 하나의 계기를 통해 비로소 억압에서 벗어나 진실의 커튼을 하나씩 열고 있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드러나게 될 추악함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지지율 추락의 악순환 사이클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고 그 과정도 치명적일 것입니다. 강제와 억압에 의해 권력을 유지해온 당사자에게 미쳐 생각을 정리하거나 손을 써볼 틈도 주지 않았던 앞선 소설과 영화의 사례처럼…

그렇게 비극적 드라마는 종말을 향해서 치닫습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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