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리박 시인의 '울 핏줄은 진달래'

[뉴스엔뷰]손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말을 하는 기계를 우리는 휴대폰이나 핸드폰으로 일컫는다.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손말틀’로 부르면 어떨까. 기계의 우리말이 ‘틀’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도 ‘날틀’이라고 부르면 좋지 않을까. 기계는 우리말 ‘틀’이고 비행기가 날라다니니 그렇다.

 e-메일을 번개끌, 용을 미르, 인생을 죽살이, 북풍을 뒷바람, 강을 가람, 정화수를 첫샘물, 조국을 믿나라, 영혼을 얼넋, 확신을 굳믿음, 시인을 글노랫꾼, 문화를 얼살이, 문명을 얼누리, 삽화를 끼울그림, 시장을 저자 등의 순수우리말을 이용해 시를 써온 재일동포 1세가 있다.

 토박이말을 연구한 재일동포 한밝 김리박 선생이 순수 우리말 시집 <울 핏줄은 진달래>(얼레빗, 2016년 6월)를 냈다. 이 책은 한글과 일본어로 함께 게재한 것이 특징이다. 광복 71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뜻깊은 시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현재 한자 어원이 대부분인 우리글을 배운 사람이라서인지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 표지

저자는 두 살 때인 1942년 경남 창원군 동면 석산리에서 태어났고, 일제 말 아버지가 오사카 구보타철공소에 강제연행 돼, 광복 1년을 앞 둔 지난 44년, 만 두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등에 업혀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이다. 올해로 72년째 타향살이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한글학회 간사이지회장과 재일한국문인협회 으뜸일꾼(회장)으로 일하며 순수 우리말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 그의 시를 더듬어 보자.

 빛되찾은 그나날에 네 살의 아들놈은

미친 듯 울고계신 아버지를 쳐다보며

겨레의 참빛되찾은 그 기쁨을 새겼도다

- 첫째매 넷째가름 둘째 쪼각 ‘아버님 생각’-

 천진난만한 네 살 어린 가슴에 ‘겨레의 참빛 되찾은 아버님의 기쁨’을 사실 알 수는 없다. 8.15광복이 얼마나 기뻤으면 아버지는 미친 듯이 울고 계셨을까. 어린 마음이지만 그날의 아버지의 모습은 일흔이 된 시인의 뇌리에 떠나지 않고 있다.

 울핏줄은 진달래요 벚꽃은 아니라고

아들딸을 사랑담아 가르치고 키우셨고

남땅서 눈감으셨건만 죽살이는 참이었네

-둘째매 넷째가름 ‘울핏줄은 진달래요’-

 봄이면 섬나라 천지를 뒤덮은 벚꽃이 피어도 시인의 가슴에는 겨레꽃 ‘진달래’가 그립다. 아버지가 아들딸에게 가르친 꽃이며, 아버지가 시인에게 남긴 꽃이다. 김소월의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 그리 그리웠을까.

 철새는 기쁠거야 믿고장 왔다갔다

겨레는 슬프네 못오가는 믿나라

빨리들 그날이 와라 늙어가는 이몸이니

-둘째매 열한째가름 ‘철새’-

 시인은 자유롭게 남과 북을 날아다니는 철새를 부러워하며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통일을 생각하며 늙어가는 시인의 몸을 탓하고 있다.

 저자가 우리말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무릇 말은 바르고 곱게 쓰면 쓸수록 고와지는데 하물며 우리 바닥쇠말은 골라서 쓰면 쓸수록 늘어나고 다듬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고 맑아지니 주시경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비와 같이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는 것이다.” - 서문 축사 ‘김승곤 전 건국대 부총장’ 중 -

 저자 한밝 선생은 지난 2013년 한여름 조선인을, 조선학교를 푸대접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차별을 하지말라’며 1인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조선학교도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 팻말을 들고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 뜨거운 햇볕 속의 교토 시내를 누비기도 했다. 그 때 일로 건강을 해쳐 지금도 날이 쌀쌀해지면 앓게 된다고. 한글날만 되면 꼭 한국을 방문해 한글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떠나는 순수 우리말 시인이기도 하다.

 자 한밝 김리박 선생은 58년 교토 시립 후지노모리 중학교, 63년 교토 조선고급학교, 1970년 조선대학교 이학부를 마쳤다. 87년부터 오사카 히라카다 교육위원회 조선어교실을 비롯해 긴키대학, 간사이대학, 류코쿠대학 등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 문화관광부에서 ‘우리말 지킴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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