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내원암 보살, 등산객들에게 떡 나눠져

[뉴스엔뷰] 부처님 오신날 집 주변 내원암이라는 작은 절을 찾았고, 부처님의 일생을 되돌아 봤다.

14일 불기 2560년 초파일(2016년 5월 14일,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서울 조계사, 순천 송광사 등 전국 크고 작은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이 열렸다.

▲ 대웅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상징인 조계사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등 여야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도들을 비롯해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만원을 이루면서 법요식이 진행됐다고 각종 미디어가 알렸다.

 

14일 오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집에서 가까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중턱에 있는 작은 절 내원암을 찾았다. 내원암은 현재 5명의 비구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암자이다.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입구 유원지 옥류동에서 금류폭포를 지나는 등산객이라면 반드시 내원암 앞마당을 거쳐야 한다.그길 밖에 없고, 그래야만 수락산장을 거쳐 정상인 주봉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미륵석불

특히 내원암은 쾌불도가 유명하다. 쾌불도는 경기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돼 있다. 쾌불도란 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법회 때 야외에 걸어 예불의 대상이 되는 대형 의식용 불화이다. 금당 안에 모신 불상을 대신해 그린 불화를 의미한다.

 

이날 내원암 보살들은 오전부터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에게 가슴에 봉축을 알리는 꽃도 달아주고, 먹을 절편(흰떡)도 나눠줬다. 대웅전 앞마당 천정에는 연등들이 줄지어 아름다움을 자아냈고, 주지 청진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총무스님인 우범 스님은 보살들과 함께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공양할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부처님 오시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산행을 하는 등산객과 이곳에 적을 둔 신도들뿐어서인지 다른 절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 연등

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천정에 연등으로 가득한 대웅전 앞마당에서 반가운 노부부를 만났다. 가끔 휴일이면 내원암 위에 있는 수락산장을 찾아 휴식을 취하러 가는데, 어느 때인가 수락산장으로 향하는 산행에서 만난 80대 부부였다. 할머니 나이가 두 살이 많은 연상인데다가, 할아버지 함자가 여자 이름이고, 할머니 함자는 남자 이름이여서 기억하기 좋았다.

 

바로 같은 동네 청학리에 살고 있는 김수정(78) 할아버지와 백학준(80) 할머니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이날도 어김없이 건강을 다지기 위해 내원암까지 왔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주말 마다 수락산을 찾는다. 가요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크게 틀고, 배낭 후면에 딸랑거리는 워낭(소 목에 건 풍경)을 달고 산행을 하는 특징이 있어, 정겨움을 느낀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만남은 반가움 그 자체였다.

▲ 부처님 오신날 내원암에 온 80순 부부 김수정 할아바지와 백학준 할머니.

한 비구스님이 이들 노부부에게 드시라고 절편을 건넸다. 물론 나에게도 절편 한 봉지를 줬다. 떡을 받은 할아버지가 미안해서인지 호주머니에서 파란 지폐(만원)을 꺼내 스님에게 주려고하자, 스님이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떡을 받은 노부부는 미안해서인지 한참을 절 앞마당에 앉자 있더니, 투명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는 떡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수락산 내원암은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103번지에 위치해 있다. 수락산의 미륵성 서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선시대 경기 북부의 중심 사찰이었던 봉선사의 말사였다.

▲ 영산전

내원암에 봉안된 불화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됐다. 쾌불은 1885년(고종22년)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사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내원암 쾌불은 전체 구도가 간략하면서도 대담하게 부처와 제자들을 배치했다. 위는 설법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를 두고 그 좌우로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가장 존경받는 가섭과 아난을 배치했다.

 

가섭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처음으로 전파한 제자로 나이가 많은 모습으로 나타나며, 아난은 한시도 석가모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설법 내용을 외운 제자로 젊고 빼어난 용모로 표현했다. 아래에는 화려한 가사를 걸치고 있으며 두 손으로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이 배치됐다. 관음보살의 몸 뒤로 물결 문양의 원형 광채가 특징적이다. 이 쾌불은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있어 중요하며 구도와 색채의 사용이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 삼성전

내원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됐다고 하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가 1955년 인법당을 지어 중건했다. 1959년에는 칠성각, 1966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했고, 1970년에는 영산각, 1973년에는 요사 2동을 새로 지었다. 1991년 미륵전이 복원됐고, 1993년에는 새로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그 역사와 함께 영험 있는 기도처로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영산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경내에 있는 미륵석불입상은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노하며 은거한 곳이 바로 내원암 주변이다. 내원암 바로 위에 있는 수락산장이 김시습이 거쳐했다고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불자들이 대웅전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이날 절 주변을 돌고 있노라니, 대웅전에서 예불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주지스님인 청진 스님의 목소리였다.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 예불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이날 주지 스님의 예불이 끝난 시점인 오후 5시경 수락산장 주인 곽유진(63)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원암에서 있으니 산장 문을 닫고 함께 내려가자고 전했다. 곽 씨도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내원암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절 앞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30여분이 지났을까 수락산장 주인인 곽 씨가 내려 왔다.

 

산장 주인 마리아 곽유진(63)씨는 함께 산장을 지키던 남편이 4년 전 세상을 등지고, 홀로 수락산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천주교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내원암 비구스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내원암을 내려오면서 그는 크고 작은 고충들을 털어놨다. 한 참 듣고 있다, 한 수 훈수를 뒀는데, 그 말에 고맙다는 말을 연신했다. 평소 생각을 즉석에서 정리해 답을 해준 것뿐인데, 연신 ‘고맙다’는 말에 되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부처님 오신날 내원암에서 노부부에 이어 수락산장 주인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잠시 부처님의 설법이 생각났고, 초파일 부처님의 오신의 날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 주지 스님의 예불

이날 저녁 집에 와 책장에서 장종천 제가 법사가 쓴 ‘땡큐 붓다’(운주사, 2014년 3월)라는 책을 꺼내 부처님의 일생을 다시 한번 살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Śākyamuni)의 석가는 “능하고 어질다”라는 뜻이고, 모니는 “성자”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석가의 다른 호칭으로 세존 · 석존 · 불 · 여래 등의 10가지 존칭이 있다. 싯다르타 고타마가 아명이며, 서양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칭한다고.

 

샤카족의 중심지인 카필라 왕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슈도다나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지난 마야 왕비가 6개의 황금 이빨로 장식한 흰코끼리가 허공에서 자신의 몸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했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로 향하다, 기원전 624년경 음력 4월8일 룸비니동산에서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싯달타(석가모니 본명)를 낳았다. 바로 이날이 부처님 오신날인 석가 탄신일이다.

 

인간의 삶인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왕자를 버리고 29세 때 출가했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해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알았다.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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