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지난해 1월 온 국민을 혼란하게 했던 신용카드 고객정보 대량유출사태를 초래한 KB국민·롯데·농협카드 등 신용카드 3사에 대한 재판이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한 채, 1년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카드사들이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 신용카드 3사에 대한 형사재판 공판준비기일이 다음달 1일 열린다.

   
 

공판준비기일이란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미리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사항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방법을 논의하는 것으로, 20만명이 참가한 카드정보유출 소송은 사건 이후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재판준비절차에 들어가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사건의 재판이 좀처럼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를 카드사들의 고의성 짙은 지연전략 때문으로 보고 있다.

카드사들은 피해자 측 변호사에게 소송 위임 사실을 증명하라며 시간을 끌었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증거 확보에 애를 먹었다. 첫 공판준비기일 결정에 1년 이상이 소요된 것도 이 때문이며, 수만명의 소송참가자들이 입증자료를 수집하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소송위임 사실 입증을 위해서는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캡처한 개인정보유출 통보와 주민등록증 사본이 필요하지만, 컴퓨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 등이 있어 이들의 증거자료 제출이 지연됐다.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공판준비기일은 5월 27일로 예정됐으나, 이마저도 카드3사들이 "변호인 일부를 기일에 임박해 선임해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라며 연기를 요청해 한 달 가량 더 미뤄졌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시간끌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사건 발생 당시 카드사들이 정보유출 내역을 파악해 개인별 통보까지 했던 만큼, 며칠 이내에 자료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고개 숙여 사죄하는 카드3사 대표. 왼쪽부터 손병익 농협카드 부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사진=뉴시스)

지난해 사건발생 당시 카드사들은 정보 유출 고객에 관한 자료를 며칠 만에 확인, 피해규모가 KB국민카드 4,320만명, NH농협카드 2,165만명, 롯데카드 1,760만명 등 총 8245만명에 달한다고 스스로 공개했다. 카드사들은 피해 사실을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물론 당사자 개개인에게도 통보했었다.

이뿐만 아니라 카드 3사는 사건 당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정신적 피해보상을 언급했으나, 이 또한 정신적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신적 피해를 증명하는 것이 소송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카드사들의 요구는 어불성설에 가깝다"라고 전했다.

금감원은 진행 중인 소송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경과를 주시하고, 필요에 따라 대책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카드정보유출 피해자 소송 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등 감독당국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응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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