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는 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몽주가 비명에 가고 619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정몽주를 본받으라'고 자랑스럽게 가르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도 정신이요 역사에 남는 것도 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라고 썼다.


김 교수는 “강남에서 차를 타고 양화대교를 거쳐 강북으로 올라치면 다리를 다 건너자마자 왼편 저만큼 동상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동상이다. 그 어른이 비명에 이 세상을 하직하신 해가 1392년인데, 그렇다면 600년의 긴 세월이 흐른 뒤에 이곳에 그의 동상을 정성스럽게 세우는 뜻이 무엇인가. ‘이 어른의 정신을 간직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전날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정몽주는 이성계를 향해 분명하게 'NO'라고 하였다. 그렇게 거절하였기 때문에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칼을 맞았건 몽둥이를 맞았건, 자객의 손에 맞아 선죽교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며 “그 피는 600년이 지난 오늘도 그 돌에 스며들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 밝힌바 있다.


김 교수는 조선 창건과 관련 이성계를 말하며 “그는 무왕 때 우군도통사가 되어 요동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 그는 충성스러운 장군 최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여 그의 손으로 무왕을 몰아내고 창왕을 세웠다가 1년 뒤에 공양왕과 바꿔치기 하였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자기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적었다.


이처럼 김 교수가 “이성계는 왕조를 하나 새롭게 창건하여 장장 27대 519년 동안 이어나가도록 그 초석을 마련한 위업의 주인공이니 한국사의 큰 지도자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라며 “이성계를 본받으라'고 가르치는 스승은 없다.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고 아마 내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일각에선 “고(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을 앞두고 조선 창건 핵심인물인 태조 이성계를 ‘평가절하’한 것은 ‘또 다른 10·26’(재보선)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메시지”라면서도 “정국흐름에 영향을 주기위한 발언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정몽주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으라는 노(老) 교수의 가르침일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저작권자 © 뉴스엔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