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포스코가 지난 3월부터 검토해오던 동부패키지 인수를 포기해, 동부그룹이 추진하던 구조조정이 원점으로 회귀한 가운데 산업은행 측이 자율협약을 제안해, 동부그룹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난 24일 취임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동부패키지 인수 검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 3월부터 끌어오던 산업은행과의 협상 끝에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뉴시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은 유동성 위기에 처한 동부그룹 등의 기업들에 대해 구조조정을 요구해,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동부익스프레스 등 계열사 매각을 통한 2조 7천억 원 규모의 자구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동부제철패키지 매각을 두고 포스코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산업은행이 동부제철인천공장 지분 70~80%를 부담하고 포스코가 20∼30%를 인수하면서 경영권까지 확보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접촉해왔으나, 포스코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애초 여러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던 동부발전당진에 대해서는 포스코 역시 관심을 가졌으나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의 패키지 매각으로, 이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수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이와 함께 이달 초 포스코의 동양파워 인수로 동부발전당진 또한 상대적으로 메리트가 떨어져 포스코가 동부제철패키지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또 동부패키지 인수를 포기한 포스코 역시 기실은 실적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권오준 회장이 취임하며 구조조정 단행을 천명한 바 있고, 최근 20년 만에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하락하고 재무상황이 악화돼 동부패키지를 인수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권 회장은 “포스코의 재무부담이 동부패키지를 인수했을 때 얻어지는 미래수익성보다 크고 그룹 전체에 미치는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동부제철인천공장 전경ⓒ동부제철

이로 인해 동부패키지 매각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던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동부제철패키지 매각에 동부그룹은 2조 7천억 원 규모 자구책의 절반에 달하는 1조 5천억 원을 희망했던 만큼, 이번 포스코의 인수 포기 결정은 타격이 크다.

포스코의 3개월에 걸친 장고(長考)를 가격협상용 제스처로 분석하는 시각이 집중되며,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애지중지했던 것으로 알려진 동부제철인천공장을 비롯한 매물 가치가 저평가되기 시작했던 때문이다.

기업들에게 인기가 있던 동부발전당진의 경우 매각이 추진되던 초기 기업가치는 3천억 원 가량에 달했으나 포스코의 검토가 길어지는 동안 동양파워인수건과 맞물려 2천억 원 이하로 떨어졌다는 관측도 따르고 있는 형편이다.

산업은행은 포스코의 인수 포기에 따라 동부패키지를 동부발전당진과 동부제철인천공장으로 나눠, 개별매각 방식으로 공개 경쟁 입찰에 나섰다.

이에 대해서도 당초 바오산 철강 등 중국 기업들이 동부제철인천공장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동부 측은 공개 경쟁입찰을 통한 개별 매각을 주장했으나 산은이 이를 묵살하고 포스코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매각 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잠재적 매수 대상자들을 선정해 의향을 물었으나 포스코를 제외하고 매수의향자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포스코에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부여하고 패키지 매각을 진행하는 동안 인수에 관심을 보이던 해외 기업들조차도 외면하기 시작해, 동부제철인천공장 공개 경쟁 입찰에 참가를 희망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뉴시스

한편 포스코의 동부패키지 인수 포기로 어려움에 직면한 동부그룹에 산은은 동부제철에 대한 자율협약을 제안, 동부그룹 측이 이에 응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부제철은 다음달 7일 7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으나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360억여 원으로 이를 갚기 어려워, 산은 측이 자율협약 신청을 제안하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알려졌다.

자율협약은 흑자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등으로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단이 시행하는 선제적 구제 지원책으로, 협약채결 시 대출 또는 채권에 대한 만기 연장이나 긴급 자금지원이 가능하다.

만약 동부그룹이 자율협약을 채결하게 되면 동부제철은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게 돼, 채무상환 유예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준기 회장은 채권단의 자율협약 요구는 응하면서도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한 13.2%의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는 거부의사를 밝혀, 채권단과 동부그룹 측은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 홍기택 산업은행장(좌)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우)ⓒ뉴시스

산은 등 채권단은 김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을 유일한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보고 이를 추가 담보로 요구해왔다.

김준기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구책을 내놓으며 사재 1천억 원을 동부제철의 유상증자에 쓰겠다고 밝혀, 산은은 김 회장의 동부화재 지분 420만 주를 담보로 동부제철에 1,260억 원의 브릿지론을 제공한 바 있다.

채권단은 담보로 설정된 김 회장의 지분을 풀어주는 대신 김 부장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김 부장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시중은행으로부터 2,300억 원 가량 대출을 받았으나, 채권단은 주가 상승으로 2,000억 원 가량의 담보 여력이 발생해 담보 제공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동부그룹 측은 금융계열사 경영권과의 연관을 이유로 거절하며 맞서고 있다.

동부화재는 동부생명, 동부증권, 동부자산운용, 동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금융지주사 성격을 띄고 있어, 동부화재 최대주주인 김 부장이 금융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주주이다.

이에 대해 동부 측이 눈앞에 닥친 7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막으려면 채권단의 도움이 필요해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나, 한편으로 채권단과 동부 측의 마찰로 워크아웃으로 갈 가능성 또한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워크아웃으로 진행될 경우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돼, 동부그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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